세트(Sète)에서 나르본(Narbonne)까지
세트(Sète)에서 나르본(Narbonne)까지, 88km의 하루
지중해 바닷바람이 아직 서늘하게 불어오는 세트(Sète)의 항구를 뒤로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나르본(Narbonne), 약 88km 떨어진 도시였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길은 끝없이 펼쳐진 푸른 수평선과 동행했고, 옆으로는 칸알 뒤 미디(Canal du Midi)의 고요한 수로가 나란히 달리며 발걸음을 이끌어주었다.
길가에는 복숭아와 자두, 살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작은 과일가게가 있었고, 땀에 젖은 우리에게 그 과즙은 그 어떤 스포츠음료보다 달콤하고 진했다.
잠시 멈춰 납작 봉숭아를 한 입 베어물 때마다, 남프랑스 여름 햇살이 온몸으로 스며들고 달콤함과 황홀한 맛과 향이 잊을 수가 없는 맛이다.
정오 무렵, 포르트리냐뉴(Portiragnes) 근처 들판에선 건초더미가 차곡차곡 굴러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소박한 간판들이 여름 축제를 알리고 있었다. 이국의 풍경이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시골 마을의 활기가 반갑게 다가왔다.
점심은 라 부셰리(La Boucherie)라는 식당에서 고기를 썰어 먹으며 잠시 쉼을 얻었다. 벽에는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칼 장인의 흔적이 전시되어 있었고, 내 앞 접시에는 미디 지방 특유의 향신료가 묻은 스테이크가 올려졌다. 달콤한 샐러드와 함께 씹어 삼키는 고기의 풍미는, 땀과 피로를 녹여주는 또 하나의 보상 같았다.
나르본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다시 수로와 가로수길로 이어졌다. 강변을 따라 달리던 내 몸은 피곤했지만, 그 피곤함조차 하나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자전거 안장에서 바라본 풍경은 더 이상 ‘남의 나라 풍경’이 아니라, 내 인생 한 장면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무렵 나르본에 도착했을 때, 광장에 늘어선 카페와 플라타너스 가로수 아래 앉아 본인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생각했다.
“32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30년을 향해 나아가는 길… 어쩌면 이 하루하루가 내 인생의 두 번째 서막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