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하(Foix)에서쌜리 뒤살라(Saint-Li)까지
해가 떠오르기 전, 푸하를 떠난 길 위는 아직 새벽안개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피레네 산맥의 산줄기는 점점 가까워지며 우리를 시험하듯 길게 이어졌다. 고도는 점점 높아지고, 라이더를 반기는 것은 오르막길 옆에 세워진 표지 판 뿐이었다. 1230m, 경사 페달을 밟을 때마다 다리는 무거워졌지만, 그 표지판은 또 다른 성취의 이정표였다.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길을 비추며 숲 사이로 금빛을 흘려보낼 때, 우리 여정은 피레네의 진짜 심장부로 들어섰다. 그곳은 바로 뚜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의 역사적인 코스였다.
산을 깎아 만든 도로 위에서, 수많은 챔피언들이 땀과 눈물을 쏟아냈을 그 풍경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가빠졌다.
그러나 라이딩이 늘 순조로운 건 아니다. 산길을 오르던 중, 동료의 자전거가 펑크가 나버렸다.
길가 풀밭에 자전거를 눕히고, 땀 흘리며 손으로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모습. 그 장면은 피레네의 웅장한 풍경과 묘하게 어울리며, 오늘 하루를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게 만들었다.
중턱을 오르며 내려다본 초원에는 갈색 소들이 옹기종기 모여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의 소들은 우리나라 한우와 너무 닮아 있어, 괜히 정겹고 반가웠다.
오후에 들린 마을 장터에서는 또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 사이사이에 시골 소품평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하얀 소들이 힘찬 몸집을 뽐내며 묶여 있었다.
그 모습은 농부들의 자부심이자 이 마을의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순간이었다.
라이딩으로 지친 몸을 달랜 건, 길가 카페에서 먹은 싱싱한 니수아즈 샐러드와 차가운 맥주 한 잔. 토마토, 삶은 달걀, 앤초비, 채소들이 어우러진 한 접시는 프랑스 남부 여름의 맛 그대로였다.
오늘 하루는 마치 작은 모험담 같았다. 뚜르 드 프랑스의 숨결, 시골 장터의 활기, 자전거 펑크라는 해프닝, 그리고 피레네 산맥의 소와 해바라기 같은 풍경까지. 하루가 끝날 무렵, 쌜리 뒤살라의 고즈넉한 돌길을 밟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런 우연과 만남이 바로 여행의 진짜 묘미가 아닐까.”
오늘의 여정
구간: Foix → Saint-Lizier
거리: 85.1km
시간: 4시간 51분
상승고도: 1,08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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