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리스뒤살라(Salies-du-Salat) → 라네메쟝(Lanneme
오늘도 새벽,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에 출발했다.
피레네 산맥의 그림자가 어슴푸레 드리워진 들판 위로 태양이 불타오르듯 솟아오르자, 하늘은 순식간에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그 빛이 곧장 우리 얼굴을 스치며, 오늘 하루의 긴 여정을 열어 주었다.
길은 단순했다. 지루할 만큼 곧게 뻗은 일직선 도로가 서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곧음 속에 담긴 풍경은 결코 단조롭지 않았다.
추수를 마친 들녘에는 둥글게 뭉쳐진 건초 뭉치들이 점점이 놓여 있었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질서 정연한 리듬은 마치 오늘의 페달링을 닮아 있었다. 짧게는 수 분, 길게는 수십 분 동안 이어진 직선 구간은 묘한 최면처럼 우리를 이끌었다.
중간중간 마주한 작은 마을의 고성(古城)들은 잠시나마 지루한 도로를 잊게 해 주었다. 낡은 돌담과 오래된 창문들은 수백 년의 세월을 품고 있었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그 웅장함은 쉽게 눈길을 빼앗았다.
하지만 이런 여정 속에서도 작은 해프닝은 피할 수 없었다. 잠시 성곽을 구경하다가, 내 신발 클릿이 페달에 끼여 빠지지 않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동료들의 웃음과 함께 그 장면은 오늘의 소소한 에피소드로 남았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가장 먼저 밀린 빨래를 해결했다. 테라스에 늘어놓은 젖은 유니폼들이 햇볕에 펄럭이며 바람에 말라갔다.
그 순간, 하루의 피로는 온전히 몸에 남아 있었지만, 옷이 말라가는 속도만큼 마음은 서서히 가벼워졌다.
오늘의 기록은 71km, 해발 상승고도 923m.
길고 단조로운 직선 도로와, 의외의 해프닝, 그리고 황금빛 저녁의 들녘까지. 하루는 고스란히 피레네의 여름 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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