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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길 위에서 본 한국의 내일

방향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by 이쁜이 아빠

마르세유의 아침 바닷바람은 묘하게도 여유로웠다.

2022년 여름, 나는 정년을 앞두고 자전거에 몸을 맡긴 채 유럽의 길 위에 서 있었다.

프랑스 남부의 푸른 해안 도시에서 시작해 스페인의 산티아고 성당까지, 1,600km를 두 다리로 밟으며 달렸다.
그 길 위에서 본 유럽 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한가로웠다. 오후 두 시쯤이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세상을 이야기하고, 저녁이면 가족과 함께 거리를 거닐었다.
처음엔 그 모습이 부러웠다.

그러나 그들의 여유로운 웃음 뒤에는 묘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한 스페인 청년, 카페사장님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정규직 자리는 없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청년 실업률이 20%가 넘는 나라에서 그의 한숨은 깊었다.
프랑스의 한 식당 주인은 손님이 몰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며, 인건비와 세금이 너무 높아 가게 문을 닫을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지역 식당주인들은 순례길에서 영업하는 것을 부러워한다고 했다.

거리는 평화로웠지만, 나라의 경쟁력은 서서히 녹슬고 있었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주 35시간 근무제와 주 4일제 실험을 이어왔다. 그 결과, 사람들의 삶의 질은 향상되었지만 생산성은 기대만큼 높아지지 않았다.

카페에서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그 여유가 국가 경제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길 위에서 실감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주 4.5일 근무제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나 또한 직장에 있을 때는 주말이 조금 더 길기를 바라며 살았다. 하지만 유럽에서 본 현실은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생산성 혁신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단축 근무는 오히려 기업의 부담과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유럽의 순례길에서 만난 청년들의 한숨은, 그 균형을 잃었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보여주는 경고 같았다.

현재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3만 5천 달러.
지금이 바로 갈림길이다.
유럽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10~20년 뒤 우리는 그들의 현재를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복지는 필요하다. 하지만 생산성과 혁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복지는 나라의 허리를 휘게 하는 무거운 짐이 된다.

성장 둔화로 세수는 줄어드는데, 복지 지출은 늘어나 국가 재정은 적자로 치닫는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기업은 경쟁력을 잃어 해외로 떠난다.

자전거의 체인은 너무 느슨하면 벗겨지고, 너무 조이면 끊어진다.
국가 운영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의 삶의 질을 존중하면서도, 기업이 혁신할 수 있는 여유를 남겨두어야 한다.

복지를 확대하되, 미래 세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그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순례길 끝자락에서 나는 마지막 페달을 밟으며 나는 다짐했었다.
내가 본 유럽의 풍요와 쇠퇴가 우리나라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 우리 아이와 손주들이 이 길을 달릴 때,
그들은 부끄럽지 않은 나라의 국민이길.
자전거 바퀴가 돌듯,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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