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와 최선의 우울

이묵돌

by 틈새의 땅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맑고 푸른 하늘, 붉게 독 오른 여름 태양이 당장이라도 검은 아스팔트를 녹여 내릴 듯 기승을 부리더니 갑자기 푸른 하늘은 사라지고 검은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우르르릉 쾅- 천둥을 동반한 번개가 한껏 어두워진 창공을 쩍-하고 가르더니 와르르 소나기가 쏟아져 내린다.


헉-갑자기 날씨가 왜 이래.

지구가 망할래나 바.


요즘 예상치 못한 변덕스러운 날씨를 보면 버릇처럼 나오는 말이다. 극지방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아내려 바닷물 수위가 높아지는 바람에 지구 한구석 어느 섬은 다 잠겼다. 이상기온으로 건조해진 날씨 때문에 세계 각 곳에서 발생한 산불은 역사적 유례가 없었다 등등. 세상이 당장 망할 듯 요란를 떠는 미디어들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게 요즘은 내가 사는 이곳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이상한 날씨가 올해 들어 유난히 잦다.


지구가 망하고 몇천 몇억만 년이 흐른 후 다시 새로운 인종이 나타나 지구를 지배하게 되면 혹시 과거 지구의 기후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몰라.


조금은 기묘하고 말도 안 되는 사명감이 들어 후두득 빗물에 흔들리는 창가로 가서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를 셀폰 카메라에 담았다. 책상 위엔 다 읽은 이묵돌 작가의 '최선의 우울'이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여운이 남을 땐 읽은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며칠씩 뒤적거리며 감정의 여운을 곱씹는 버릇이 있다. 십 대 청소년 때엔 헤세의 '싯다르타'와 '데미안'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그랬던 것 같다. 그 후론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해서 또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귀밑머리가 희끗해진 지금까지는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책은 바퀴벌레 대하듯 했다. 그놈의 먹고사는 게 뭔지 그걸 핑계로 모든 걸 다 뒤로 밀었다. 제일 후회하는 일이다. 어느 순간 아- 이건 아닌데 싶어 다시 책을 찾았다. 몇 년 전부터 일 년에 적게는 20권 많게는 삼사십 권씩 꾸준히 읽는다. 죽을 때까지 그럴 작정이다.


책 속의 메시지와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여름 소나기가 시너지를 이뤄서인지 조금 말랑말랑하다. 최선의 우울에서 처럼 이삼십 대땐 나도 우울증의 늪에 빠져 속된 말로 똥오줌 못 가리고 질퍽거렸기 때문이다. 알바로 모은 돈으로 남몰래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도 먹었지만 별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우울증이라는 게 병든 마음 아니 과학적으로는 뇌 속 특정 호르몬의 불균형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보면 병든 마음이 치유되면 호르몬의 균형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경험상 그렇다는 거다. 그렇게 절박한 마음으로 의사를 찾았지만 삶에 대한 염려와 불안으로 바닥을 기던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것만 같았던 의사의 뜬금없는 말 한마디에 찔려 그만두어 버렸다. 의사가 처방한 기간 동안 치료받을만한 돈도 없었다. 결국 별 대책 없이 물리적 정신적 죽음의 경계를 왔다 갔다 했는데 그때는 시절이 시절인만큼 가족이나 친구에게 우울하다고 대놓고 말할 수가 없었다. 우울을 다룬 의학이나 심리학 책도 거의 없었다. 있어야 영어 원서였는데 영어원서 읽을 능력은 안 돼 어두운 자취방에 홀로 앉아 죄 없는 술만 퍼마셨다. 그때 알콜중독 안된 건 이 세상 보이지 않는 어떤 선순환적 순리의 도움이라 생각되 진심으로 감사하다. 중요한 건 세월이 준 연륜 때문인지 이젠 웬만해선 그렇게 우울해지지 않는다. 설사 우울해진다 해도 그저 몇 분에 불과하다. 좋게 말하면 거듭된 상처가 준 내성으로 단단해져서 나쁘게 말하면 오랜 시간을 우울과 투쟁한 꼰대의 뱃심 승리가 탈탈 털렸던 내면의 방패가 됐다고나 할까. 우울은 그냥 우울일 뿐이지 머 별 거 있겠냐만은 그래도 내가 앓았던 이삼십 대의 우울과 지금의 이삼십 대의 우울은 어떻게 색깔이 다른지 알고 싶었다. 같은 MZ세대인 작가의 시선을 빌려 좀 삐딱한 내 새끼를 객관적으로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무엇보다도 군더더기 없는 이묵돌 작가의 글을 좋아하기도 한다. 책 한 권 읽은 걸 가지고 구구절절 참 말도 많다.


어쨌거나 불행했던 과거를 소환하며 이유 없이 불쑥불쑥 찾아드는 우울과 슬픔을 견디는 삶에 대한 작가의 노고가 먹먹하다. 사실은 징징대는 것 같아 조금 짜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우울증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니었던가. 어린 시절, 징징대야 매가 됐든 떡이 됐든 머 하나라도 떨어지고 얻어맞은 자리에 헌디딱지 하나 덜렁 남으면 이젠 그 무엇이 찔러대도 더 이상 아파지지 않는 것. 결국은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고 나아가다 보면 우울도 슬픔도 지나가 버린다는 것에 대한 작가의 깨달음이 의미 있다. 절망과 우울도 가끔씩 찾아오는 행복처럼 인생의 한 패턴일 뿐이라는 자각으로 최선을 다해 우울을 받아들이겠다는 메시지는 감동적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삶의 끝자락이 가늠되는 나이까지 살아 보니 실제로 그렇다. 행복도 불행도 죽음 아니면 해결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절망과 우울, 슬픔까지도 무심히 불어왔다 흔적 없이 소멸하는 바람처럼 단순한 삶의 한 과정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별히 행복한 건 없지만 이젠 매일 아침이 숨을 쉬고 있는 순간순간이 귀하고 소중하다. 갑작스런 소나기와 함께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었던 평범한 여름 한 날이 더없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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