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의 사랑
누군가 던져 튕겨진 럭비공에
아이들은 선택도, 준비도 없이 몸으로 부딪혀야 했다.
무거운 유리가 덮인 커다란 식탁, 격식 높은 꽃그림 그릇에 담긴 저녁식사는 어색한 미팅처럼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되는지... 그저 입술 사이로 작은 움직임만 바빴다.
퇴근이 늦어진 딸은 기숙사 사감실에 불려 온 학생처럼 두 무릎을 붙이고 아빠의 궁금증과 관심에 반듯하게 대답했고 감사한 식사가 되도록 최선을 보였다.
작은 영문이 수저 끝에 깊게 파여 반짝이던 딸의 수저는 왜 그렇게도 무겁게 보였던지...
오른손에 수저를 들고 한없는 이야기와 웃음을, 입안에 밥알이 보이도록 시끄러웠던, 고등어 한 마리를 서로 당겨 먹다 웃고 싸우던 26평 그때가 그리웠다.
그때는
나이보다 앳된 얼굴과 작은 목소리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림을 이끄는 모습에 동네에서
소녀가장이란 호칭이 따라다니기도 했었다
아이들은 나의 미래였고 기쁨이었다
미래가 있는 나의 일상은 나의 삶이고 전부였다.
늘 분주했고 씩씩했고 당당했고 밝았던 이유였다.
그와의 삶이, 또 다른 미래를 위한 몸부림으로 나와 아이들에게 전부가 되고 있었다.
딱딱한 어깨로, 두 손을 잘 접는 태도와 적절하게 미소를
보이는 모습은 분명 신입 인턴들의 저녁식사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란 테두리에 각자의 위치가 정해지고 있었다.
늘 바쁘게 출근하고 나의 결정권으로 실패 없는 경영은 때때로 성취감을 주었다. 노련함으로 매장을 확장하느라 최선을 다 하는 대표였지만 그와 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출근가방을 함께 들게 되었다. 늘 혼자 매장을 이끌었던 나는, 대표가 아닌 한 남자의 아내로 그를 잘 보필하는 여자로 출근하게 되었다
그는 부지런했고 스마트한 두뇌와 사업가의 모습으로 종사자들에게 우거진 나무가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부러워했고 나도 덩달아 행복과 사랑이란 손바닥이 또 다른 삶으로 나를 잡고 있었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답게 쉬지 않고, 일을 찾아 해결했고 시간관리가 철저했으며 새로 만든 가정을 위해 수학공식처럼 실수 없이 풀어내려 했다.
공식 안 기호처럼 정확하게,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일을 잘 해내야만 행복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출근도 퇴근도 함께 했다.
한여름 통유리에 데워진 집은 저녁밥을 짓는 동안 나에겐 근무연장처럼 길게 느껴졌다.
취침시간이 되면, 그는 자고 있는 아이들 방에 들러 이마에 뽀뽀를 해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잘 자.'인사를 했다. 새로운 문화 충격이랄까! 새아빠를 아이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모든 것이 우리에겐 어색했지만 난 받아들여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그에게 맞추도록 주입시켰다.
나 역시 그의 세련된 문화에 흔들림 없는 초점으로 고분고분한 아내로 다듬어지고 있었다.
그가 스치듯 했던 말들은 영어 단어를 외우듯 머리 안에 구겨 넣어져
담겼다
수건을 사용하면 다시 말려서 사용한다는 외국 이야기가 나에게 실천해야 한다는 요구처럼 들려졌다. 매일 아침 아이들이 어설프게 던져놓은 여러 장의 수건을 감추느라 괜스레 안절부절 바빴던 것을 지금은 나만 기억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치킨이 먹고 싶은 어느 날 밤, 아이들은 치킨을 샀다. 아이들은 조용한 밤에 늦은 야식이, 새아빠 문화에 어긋날 것 같은 걱정과, 김이 나는 치킨에서 행여 음식냄새라도 풍기면 어쩌나 한, 불안으로 치킨 한 마리를 들고 어디서 먹어야 될지 아이들은 뒤꿈치를 들고 다니며 장소를 찾으러 노력 아닌 노력을 해야 했다 조용한 밤, 새아빠가 조심스러워 아이들은 치킨을 먹기 위해 결국 밖으로 나갔다.
계단 아래 앉자 쫓기던 범인의 안식처 같은 불안으로 식어가는 치킨을 들고일어났다. 층마다 6개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으로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파트 내부도 어디 하나 편한 장소가 아니었기에 결국 식은 치킨을 냉장고 귀퉁이에 넣고 피곤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서글픔과 허기짐이 뒤엉켜 밤을 보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알게 되었다.
냉장고에 묶여 있던 검정봉투는 어젯밤 비밀을 안고 덩그러니 초라하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펴지도 못한 검정봉투는 내 눈을 아프게 했다.
넷이 된 우리는 가족이란 마법에 걸려 서로가 서로를 붙잡고 그렇게 걸어가고 있었다.
재혼은 누구를 위한 선택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