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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Nov 17. 2018

관계의 불확실함

파랗게 멍든 시간들.2

여전한 것들이 좋다. 동네 길 모퉁이에 오래도록 자리잡고 있는 거목이나 오랜만에 만나도 얼마전 만났던 것 처럼 편한 친구들, 예전부터 귓가를 맴도는 멜로디 같은 것들. 언제나 그렇게 있을거라는 믿음에 안도감이 나를 감싼다. 그래서 자꾸만 찾게 되는 것. 그 기억은 결코 죽지 않으며, 나의 예민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고스란히 소화 시켜주는 안정제라고 생각한다.

우울하고 예민한 감정들이 매일 찾아오진 않았다. 따뜻하고 나른한 오후도 있고, 오고가며 만난 사람들로 인해 생기는 소소한 행복들이 있었다. 그래 오고가며 만난 사람들. 항상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서 안정감을 주는 여전한 것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가끔은 배신당하고, 나의 실수로 떠나가고 그 과정중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던 듯 하다. 어쩌면 내가 그들을 믿었던 것은 그들을 믿은것이 아니라 그들과 나의 관계 속 불확실성을 믿었던 것은 아닐까.

확정적인 것은 어느것도 없다. 결국 거목도, 친구도 어느 순간에는 변하기 마련이지. 떠나가고 없어지고. 여전한것이라 칭하는 것들은 너무도 많은 변수를 지니고 있다. 늘 거기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떠나간다는 것. 이걸 깨달은건 16년 1월 말, 군 말출 1주일 전이었다.

당시 말년병장이던 나는 ‘할아버지께는 전역하고서 찾아뵈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설 연휴 휴가를 포기하고 마지막 휴가에 모든 휴가를 몰아 둔 상태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도 휴가 1주일 전 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부랴부랴 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소식을 들었을 때 진정이 되질 않았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막상 목포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선 눈물이 나질 않았다. 실감이 나질 않았다. 부의금을 정리하고 있는 중에도 할아버지께서 “이게 다 뭔 돈이냐, 뭐가 이렇게 많냐.”하며 농담하실 것만 같았다. 모든 장례가 끝나고 할아버지의 방을 들어갔을 때. 할아버지 냄새가 가득한 그 방안에 할아버지만 계시지 않았다.

슬픔 마음을 추스리며 부대에 복귀한 뒤 1주일 후, 나는 마지막 휴가를 나왔다. 부대 위병소 앞에서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이후 명절 날 목포집을 내려갈 때 마다 할아버지 냄새 가득한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다. 어느덧 2년이 지났다. 슬슬 방안에서 할아버지 냄새가 미미해져 간다는 것. 그렇게 잊혀져 간다는 것이 서글플 수가 없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엄마 냄새가 베어 있는 이 베개에서 냄새가 사라져 간다면. 마음이 복받쳐서 어쩔 수 없는 밤이 되어버렸다.

가족 마저도 이렇게 불확실함 속에 존재하는데, 그 어떤 관계가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너와의 관계 속 불확실함을 사랑한다는 말이 아닐까. 관계가 가진 서글픈 이면에 상처받는 우리들. 사람이란 동물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성장통이라고 칭해야 할까. 나에게는 그저 이 아픔이 무뎌지지 않는 아픔으로 존재 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미련하게 들리겠지만 이 불확실성을 사랑하는것을 그만두진 못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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