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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Nov 22. 2018

실수와 대처에 관한 고찰

파랗게 멍든 시간들.7

항상 그래왔다. 실수라는 건 ‘행동’에서 오는 실망감보다 ‘대처’에서 오는 실망감이 크다는 것. 누구나 실수를 하며 살지만, 매번 실망하지 않는 이유는 충분히 괜찮은 대처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사람에게 실망하는 순간은 앞서 말한 ‘대처’가 부족한 순간에 찾아온다. 이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며, 나 또한 그랬었고. 그 순간은 당사자들에게 상처로 남기 마련이다. 후회되는 순간이 되어버리지.

다들 말하잖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여기서 중요한 맥락은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에게, 혹은 당신에게 실수를 했을 때 기회를 몇 번 주었음에도 대처를 하지 못한다는 건 결국 관심이 없다는 의미다. 이건 ‘대처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대상에게 애쓰고 있는 우리야말로 스스로에게 실수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가끔은 그런 기분이 들곤 한다.

역설적이게도 실수를 했을 때 최고의 기회가 온다. 연애학이라는 웹툰에서 이런 비유를 했다. 자판기에 1000원짜리를 넣고 700원짜리 음료수를 뽑아 마신 후 남은 300원에 다시 1000원을 채워 넣는다면 더 가득하게 느껴진다고.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과의 사이에서 이걸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더 채우는 것. 이게 중요하다. 실수를 함으로써 나에 대한 기대치가 내려갔을 때 실수를 만회하려고만 한다면 본전치기가 될 뿐이지만, 신중하게 더욱 채운다면 훨씬 가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지. 오히려 그 모습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노릇이고.

상대방을 채우는 것 보다 스스로한테서 느끼는 게 더 크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자신감과 자존감 얘기인데 나의 대처가 성공할수록 나는 실수조차도 잘 넘긴다는 자신감이 생기지만, 대처가 실패했을 경우 빠지는 우울감, 상처를 극복해 내면 자존감이 생긴다. 자존감은 실패를 극복할 때 깊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실수를 했다해서 당황하기만 하는 건 안 돼. 만약 실망을 줬다 해도 이전의 아쉬움에서 배우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야.

결국 실수를 평가하는 건 상대 또는 상황이다. 본인이 실수를 했는데 다시 안하면 상대가 회복이 될까? 평가는 상대방이 하기 때문에 나는 얼마나 깎여 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실수에서 깎인 점수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어내야 관계가 회복이 된다.

이 과정 중에 나에게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물어본다면 모든 노력을 다 해보라고 답한다. 올인. 더 높은 배팅은 없다. 다 걸어도 잃을건 없다. 이미 실수를 통해서 내 점수는 내려가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모든 걸 걸고 노력해야하는거지. 그만한 노력이 필요 없다면, 그 사람과는 그냥 ‘거기까지’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실패가 무서워 실수를 외면한다면 이 또한 ‘거기까지’인 것.

해발을 측정할 때 수면 위부터 측정한다. 하지만 수면 깊은 곳에 더 많은 땅이 있다면 산이 높아 보일까. 수면 밑은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일단 내려가 봐야 한다는 것. 깊이를 알게 되었을 때, 보이는 것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 실패와 성공, 모두 같은 위험을 지니고 있다. 수면 밑에서 질식사를 하든, 산꼭대기에서 산소결핍으로 죽든 결국 마찬가지다. 성공하면 자신감, 실패하면 자존감을 얻는다. 결국 얻는건 마찬가지다. 뭐든 득이 된다.

더 이상 나의 삶에 실수를 두려워하고 싶지 않다. 작은 실수조차 기회로 만들고자 한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서 더욱 성숙해 질 수 있다.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늦어버린 판에 나의 패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더라도 지금 와서 알 수는 없다. 그렇다면 흘러간 것들은 그렇게 놓쳐야지. 놓아야 해. 거기까지가 진심. 그 이상은 미련인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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