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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Nov 21. 2018

기억의 힘

파랗게 멍든 시간들.6

기억은 참 묘한 힘을 가지고 있는듯해. 죽도록 힘들었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색해지기 마련이지. 그냥 웃음 한번 툭 던지고 지나갈 수 있게 되는 것. 아마 망각이라는 특수성 때문일까 싶기도 하다. 알렉산더 포프의 글 중에 “망각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 마저 잊어 버리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흔히들 말하는 ‘이불킥’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농담처럼 놀림조로 말 할 수 있는 이유가 이 또한 잊고 살 수 있기 때문이겠지.

앞서 말한 알렉산더 포프의 구절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나오면서 사람들이 더욱 인상 깊게 느꼈을거라 생각한다. 특히 사람의 기억을 다루는 영화중 가장 슬프고 아리면서 아름다웠던 영화이기도 하니까. 이 기억만은 지우지 말아달라 절규하는 짐 캐리의 연기가 가볍지 않았던 이유는 언젠가 지워질 아름다웠던 기억에 대한 미련때문일까. 누구나 하나쯤 잊기 싫은 기억은 있을테지. 다신 볼 수 없다 해도 그 때, 그 시절 뜨거웠던 기억들.

영화나 소설 등 어떤 작품을 접했을 때, 그리고 시간지나 접했을 때 느낌이 매번 다른 작품들이 있다. 이터널 선샤인이 그랬고, 어린왕자가 그랬다.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기를’도 마찬가지였고. 경험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무게가 무거워지는 작품들이다. 기억이 쌓인다고 표현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다. 나는 사람의 머리속에 책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은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고. 이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책장이 늘어갈수록 우리는 꺼내 읽는 책들이 한정되기 시작한다. 아마 먼지덮힌 책들이 우리가 망각해가는 기억일것이고. 위에 언급한 작품들의 무게가 늘어가는것은 쌓여있는 책들이 작품을 통해 조금씩 열려가는 과정중에 있지 않을까.

언젠가 잊혀질 기억들이며, 잊혀질 사람이고 잊혀져 가야만 한다면 나는 내 삶에 무언가 하나쯤 남기고 싶다. 내가 살아 왔다는 발자취를. 내 거취를. 이 또한 잊혀질테지만 이것마저 없다면 아쉬움만 남길것 같아서. 누군가의 기억속에는 내가 있었다는 책 한권쯤 꽂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름 잘 살았다고 생각할거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것을 망각하며 살았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잊고 살았을까. 이 글을 쓰며 하나하나 더듬어보았다. 누군지는 생각나지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들, 누군지 조차 생각나지 않는 사람들. 나또한 그들에게 이런 존재가 되었을거다. 무수히 많은 기억들의 틈을 비집어 꺼내지 않으면 꺼내어지지 않을 사람. 그런 사람.

가끔 궁금하다 나는 그들에게 있어 어디쯤 존재하는지. 기억 되고 있는지. 기억은 하는지. 나에게 그들은 어디쯤에 있을지. 기억의 책방을 뒤져가며 하나하나 간직하고 싶다. 그날의 나를, 그 시간속에 존재했던 나의 느낌을. 책장의 크기가 작던 시절의 나를 마주하고 싶다. 지금의 내가 당당히 설 수 있을까 싶지만. 내가 나를 사랑해야지. 그 기억들을 살펴가며 어렸던 나도, 순진하진 않지만 순수했던 나도. 사랑해야해. 우울했던 나도. 아팠던 나도 전부 나라서. 잊으면 안돼. 내가 나를 위로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위로할 수 없어.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만큼 슬픈 짝사랑은 없어. 그러니까. 나를 알아야해. 나의 기억들이 나의 밑바탕이 될 수 있도록.

나는 기억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의 내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 쌓을 책들로 나를 더욱 정교하게 조각해야지. 나의 지난날 실수들을 잊지 말아야지. 그럼에도 잊혀지겠지만. 아팠던 나를, 후회 했던 시간을 온전히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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