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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Dec 01. 2018

너라는 수식의 해답

파랗게 멍든 시간들.14

아는 문제를 틀리는 것 보다 모르는 문제를 틀리는게 더 낫다. 적어도 맞출 확률이 높은 문제는 틀렸을 때 억울하지만 잘 모른다면, 그렇다면 틀릴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 하고 넘길 수 있으니까. 다음부터 틀리지 않으면 되니까. 그럼에도 아는 문제를 사소한 실수로 틀리는 경우들이 꽤나 있다. 이미 틀린 답은 다시 고쳐 쓸 수도 없고 채점은 끝나버린다. 그 문제는 나에게 있어서 틀린 문제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너와의 시험지에서 나는 몇점이었을까. 나에게 너는 아는 문제였을까. 이미 답을 고치고 고쳐 문제가 흐려져 버렸다. 좋이는 닳아버리고 찢어져 있다. 이제는 아무 상관 없는데, 그런 하루들을 보내던 중 문득 오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는 나에게 있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노력하면 되는 줄 알았다.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참 많더라. 그래서, 묻고싶다. 나는 너에게 얼마나 많은 답을 건넸고 오답은 얼마나 되었는지.

이제는 계속 썼다 지웠다 하며 닳아버린 종이보다는 새 종이에서 시작하고 싶다. 이미 수많은 답을 고쳐쓰고 그 모든 답들이 오답이었으니 너는 나를 믿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드는걸 보면 너는 나에게 정말 난제인듯 해. 내가 누굴 만나고 또 사랑을 하더라도 너라는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건 어쩔 수 없이 응어리로 남아있을 듯 하다.
 
그래. 내가 풀 수 없던 문제였다. 너는. 규정 할 수 없고, 기대하고 싶었던 너. 뭔가 특별한게 있는 듯 했던 너. 나를 못 믿고, 내 얘기 하나 조차 들으려 하지 않았던 너. 끝내 나에게 수많은 자상만 남기고 가버린 너. 나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너. 그런 너를 풀고자 수 많은 답을 고민하고 또 풀어내고 틀리면 고쳐내고 했던 나. 그렇게 멍청하게 반복되던 하루가 끝난건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풀 수 조차 없었으면서 너에게 쏟아붓는 내 모든 노력들이 전부 허튼 일이 되어버린다는걸 뒤늦게 깨닫고 허무함 속에서 좌절 할 일은 없는 거잖아.

힘겨운 24시간들, 또 하지 못한 말과 너에 대한 생각들이 반복되던 그 날들이 지금 와서 어쩌면 바보같은 짓이었다 느껴진다면 그냥 헛웃음 한번 치고 넘기면 되었을 터인데. 그때의 나는 미련하고 바보같아서 당장에 놓아야 하는것들을 보았을 뿐인거다. 이제와서 후련해지니 그때의 내가 다시금 보인다. 그래 3인칭이 필요해 스스로의 삶에는. 3인칭으로써, 타인으로써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필요가 있어. 모두가 끝내라고, 왜 힘든걸 끌어가냐고, 그 어린 생각과 이기심이 너를 좀 먹고 있다고 말 할때 사랑 하나면 다 될줄 알았던 바보 같았던 나.

난 이제 더이상 맘 아플 일도 없고, 또 다른 문제를 마주하려 한다. 이 문제를 풀어내고자 머리를 짜내고 노력할거고, 성장따윈 일절 없는 바보같은 사람이라서 풀지 못할 문제일지라도 노력하겠지.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결국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처럼 언젠가 풀어 낼 거라 믿으면서. 풀릴 문제라 믿고서. 또 상처 받고 아파할지도 모르는거지. 그래도 지금 당장은 하나의 문제를 풀어냈다. 겨우.

답이 없다는 답. 풀 수 없다는 답. 너는 난제가 아닌 그저 오류로 이루어진 문제이기에 정답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답.  그래 이미 답은 나왔었어. 풀지 못할 문제라는 답. 그러니까, 끝내는게 맞았던 거다. 다시 정의하기 조차 싫은 수식이다. 더이상은 나를 잡고 질질 끌지 않길 바란다. 어깨에 묻은 먼지 털듯이 지금 나는 털어버린다.

내가 너에게 주었던 모든 애정과 그리움, 그리고 좋았던 기억들.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램. 거기까지가 나의 진심. 그 이상은 미련인거지. 알고 있어. 이제 나는 괜찮아. 지나간 것에 미련따위 이제는 갖지 않아. 그냥 나는 나의 갈 길 그대로 가면 되는거니까. 너의 다음 사람에겐 나에게 주었던 상처같은거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기도 하나 허공에 흘려 보낸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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