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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Nov 30. 2018

파랗게 멍든 시간들

파랗게 멍든 시간들.13


불행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우울함과 적절한 거리를 지키는 것.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결국 우울과 떨어질 수 없는 몸이고, 이게 불행 하다면 불행한거지.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살아내고 있다. 살아지고 있는 것 같다. 살고 있다. 버티고 버티다 한번씩 못버틸만큼 우울이 쌓일 때 한참을 울어낸다. 한참을 또 울고 울어서 눈이 퉁퉁 붓고, 목이 매어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올만큼 울고 나면 그냥 뭔가 후련해진다.

한 때 치료를 받고 약을 먹던 시절, 매일 밤이 가슴 언저리의 아픔을 찢어내는 반복이었다.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악지르던 날의 반복. ‘파랗게 멍든 시간들’이라는 매거진 제목도 이때 생각한 문장이었다. 밤이 되면 늘 그 감정이 아파와서 멍들어 있는 것 같아서. 건들지 않으면 괜히 아프지 않을 것들인데 밤은 참 약고 약아서 알게 모르게 툭툭 건들고 지나간다.

오늘도 어제처럼 열심히 살고있고 이렇게 살다보면 살아야 하는 명분이 생기겠지. 이렇게 살다보면. 시퍼렇게 물들어 있는 새벽의 공기를 마시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분명 살다보면 누군가에겐 사라져선 안 되는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을거고, 행복한 일들도 생기겠지. 그럼에도 ‘사라진다면’ 이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고 괜한 죄책감과 후회들, 실수에 대한 자괴감, 내가 다 망쳤다는 나에 대한 분노 같은 것들이 나를 감싸고 좀먹듯이 솟아 올랐다.

이 시기가 내 삶에서 힘든게 가장 빡셌던 시간이었다. 한치 앞도 보이질 않고, 내가 건너는 이 길이 맞는건지도 모르는. 그리고 지나면서 배운것은 아무리 어두운 호수라도 내가 발을 담궈보지 않는 이상은 그 깊이를 모른다는 것. 일단은 부딛혀 봐야 한다는 것. 하나하나 해결이 되어가고 남은것은 우울이 지나간 자상뿐이다.

온전히 아물지 못한 채로 그저 건들지 않고 있을 뿐이다. 나를 숙주 삼아 기생하는 존재라서 나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것. 나에게 불행은, 우울은 그렇다. 그쯤 다시금 글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든 문학은, 글들은 불행들을 모아다가 곱게 접어 정리한 것이라는 생각. 그렇게 아팠던 덕분에 지금 나는 글을 쓰고 있고 이 활동을 즐겁게 하고 있다.

인생은 사춘기의 연속인걸까? 하나의 아픔이 해결되면 또 다른 성장통이 찾아오고 또 찾아온다. 아프지 않은 나날이 없다. 행복이란걸 알기에 불행을 아는건 아닐까 싶지만, 일단은 그냥 아프다. 그만 아프고 싶다. 아픈것들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나는 아픔을 알기에 남을 위로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다행인거지. 내가 바랐던 것들, 내가 참으로 바랐지만 받지 못했던 것들을 해주면 되니까.

쓴웃음을 짓고 아무렇지 않은 척 무덤덤하게 말을 건네고. 그럼에도 다행인건 내가 무너질 때 나를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전화하면서 갑자기 터져나오는 울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다독여 줄 친구가 있다는 점에서 나는 사람을 헛되이 만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내가 아무리 비참하고 한낱 먼지같다고 느껴질 때 나에게 삶의 의미를 불어 넣어주는 존재.

사람의 마음이 끝에 몰렸을 때 얘기할 구석이 없다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는걸 체감한 이후로,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준 이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 또 내가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내 목소리를 들었을 때 속 얘기를 꺼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해준 당신에게도 감사한다. 그래도 내가 살아 있어서, 그래서 네 얘기를 들어 줄 수 있었으니까.

세상 모든 아픈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보고 싶다. 당신은 얼마나 아팠을까. 고생하고 또 고생했어. 행복 하나 찾자고 애쓰지 말자 우리. 그저 기다리자. 언젠가 찾아올 행복이 편안히 안착할 수 있는 구석을 마음에 하나 열어두자. 당신들을 사랑해. 당신들의 마음을 사랑해.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이렇게 파랗게 멍든 시간이면 많이 버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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