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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Jan 14. 2019

뒤적거리다

파랗게 멍든 시간들.33

“나는 아직도 처음 제대로 너를 봤을 때를 잊지 못해. 그때 네가 나한테 준 떨림과 설렘은 아마 다시 또 느끼지 못할 큰 감정이겠지. 어색하고 서툰 말솜씨지만 솔직한 네 눈빛이 진심을 다 대변하듯 답해줬어. 사랑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사랑해주고 싶은 너와 사랑을 나누고 싶다. 사랑을 줄 수밖에 없는 너를 만나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워가고 너와 내가 우리가 되어가며 서로에게 당연해질 때쯤 우리가 진심어린 사랑이라는 걸 하고 있으면 좋겠다. 너의 모든 면을 사랑하고 싶어 진심이야. 어색하고 쑥스러운 말을 못 해서 꼭 맞잡은 손과 사랑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말하는 네가, 표현을 못 해 내게 늘 미안해하는 네가, 나의 무뚝뚝함을 귀엽게 봐주는 네가 좋아.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지금이 더 소중하고 그런 매 순간 네가 있기에 더 특별해지는 오늘이 또 흐르고 오늘보다 너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내일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여전히 늘 사랑해.”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핸드폰 메모장을 뒤적거리다 마주하게 된 오래전에 묵혀둔 문장들. 그때의 나는 얼마나 절실했고, 얼마나 어렸었나. 결국 서로 다른 누군가를 다시금 만나며 진심어린 사랑을 할 것이고, 또다시 나는 사랑을 적어나갈거야. 가끔 생각나. 내가 너에게 울면서 나를 더이상 울게 만들지 말라던 그 날이. 그때 나는 네가 정말 간절했었어. 그리고 그렇게 아팠고, 내가 가장 힘든 그때에 잔인했던 네가 밉지 않았다면 그것도 거짓말인걸.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멋지지 않아도 괜찮아.’ ‘아름답지 않아도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괜찮아.’라는 말이 필요했어. 매일 매일 24시간을 잠과 약으로 때우면서 늘 말도 생각도 고와야했어. 체중이 많이 줄었지. 우울증으로 인한 섭식 장애로 체중이 순식간에 줄어버리자 입을 수 있는 옷의 선택지가 대폭 늘었어. 자연스레 옷장을 드나드는 택 붙은 새옷이 늘었어. 책과 옷을 사면서 그걸로 위안 받았어.

대학 복학때부터 작년까지, 측근이었던 그들이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이는 모습을 보며 도저히 그 기준에 맞출 의지가 태생적으로 없어졌다. 어떤게 옳은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고, ‘어떻게 해야하지.’ 라는 말이 입에 붙어버렸어. 상념에 고통스러울 때 마른 세수도 하고 알러지 때문에 가려울 때는 편하게 눈을 부볐어.

시간이 어느덧 많이 지났음에도 그 시절이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복받쳐 오르더라. 얼마전 술자리에서 그 시절에 대한 얘길 하다가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어. 그 때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그 말이 너무 고마웠어요. 그리고 찬 바람을 쐬면서 생각했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언젠가부터 우리는 슬픔을 가득 머금고 설핏 웃으면서도 말갛지 못했지. 부디 이 사랑을 가엾게 여겨주길 바라. 내가 그랬고, 그래서 나를 버리려 했어. 그날 뒤돌아선 내 어깨가 들썩이는걸, 귀퉁이 뒤로 무너지듯 놓아버린 그 울음을 모른 척 한 내 더딘 사랑이 아직도 가여워. 그렇게 진심을 이긴 거짓을 그 땐 몰랐으니까.

제발 우리 우연히라도 만나지 않기로 하자. 문득 소식이 들려도 모두 가볍다는 듯 퉁기고 뒤돌아 몰래 울것 같지만, 온기 없는 무릎을 끌어모아 얼굴을 담그고 조금씩 갈구하다 들끓어 어쩔 수 없게 놓아버리겠지만 말이야. 죽을 것 같아도 살 만큼만 야금야금 회복되는 과정을 겪었으니 할 수 있을거라 믿어.

그런데 있잖아. 아주 만약에 달 하나가 다 지워져도 어른이 되지 못하면 어떡해야 할까. 그저 지금은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내추럴한 체 하는 통제말고. 그곳에서.


글. 김태현

그림. 윤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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