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8. 진도믹스(a.k.a시고르자브종)에 대하여
옛날 옛적 진돗개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충성심의 아이콘이었는데, 오늘날 진돗개를 떠올리면 짧은 목줄을 한 채 마당에 묶여있는 슬픈 눈의 강아지들이 먼저 떠오른다.
산책 한번 하지 못하고 짧은 줄에 묶인 채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이나 먹으면서 평생을 살았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진도 믹스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진도 믹스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관련된 것이었다. 직접 진도 믹스 강아지를 기르면서 느꼈던 오해와 편견의 벽,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모르게 받았던 자그마한 상처까지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버려지고,
가장 입양이 어려운 견종
사실 진도 믹스는 가장 쉽게 버려지고 가장 입양이 어려운 견종 중 하나다. 실제로 유기견 보호소를 방문해보면 우리가 흔히 시골 똥개, 시고르자브종이라고 불리는 진도 믹스들이 넘치고 넘쳐난다. 실제로 소형견이 대형견보다, 품종견이 믹스견보다 입양이 잘 되는 까닦에
작지도 않고 혈통도 없는 진도 믹스 강아지들은 입양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보호소에서 긴긴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개 중 운이 좋은 몇몇 아이들은 해외 입양길에 오르기도 하지만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는 해외 입양길도 막혀 평생 가족을 찾아주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진돗개는 마당에 묶어서 키워야 해"
"진돗개는 공격적이야"
"그런 크고 거친 개를 왜 키워"
많은 사람들이 진돗개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묻고 싶다. 진돗개는 평균 몸무게 12~18kg 정도 나가는 중형견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웰시코기나 비글, 베를링턴 테리어, 비숑, 시바견 등과 비슷한 크기, 비슷한 무게의 강아지다. 그런데 우리 중 누구도 지나가는 비숑에게, 웰시코기에게, 비글, 시바견에게 무섭다, 공격적이다, 거칠다, 그런 개를 어떻게 실내에서 키우냐라고 묻지 않는다. 그런데 왜 진돗개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저런 이야기들을 하는 걸까.
내가 팔로우하는 보호소 인스타그램 계정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글은 바로 진도 믹스 강아지 입양 홍보글이다. 그러나 보호소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것도, 전염병에 걸려 죽는 아이들도, 안락사되는 아이들도 모두 진도 믹스견이다. 실제로 건강하고 어린 품종견은 입양 홍보글이 올라오자마자 엄청나게 많은 입양 문의가 유입된다고 한다. 그러나 믹스견들은 다르다. 건강하고 어린 아이라도 진돗개라면, 크기가 크다면 입양 가는 것이 쉽지 않다. 일본의 토착견인 시바견은 유행처럼 키우면서 왜 한국의 토착견인 진돗개는 이렇게나 무시당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야 하는 걸까 궁금하다.
그래도 요즘은 조금씩이나마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유명한 연예인들도 믹스견을 입양해서 키우기 시작했고(대표적으로 성훈이나, 엄정화, 박세리 등 - 의식 있고 너무 멋진 분들) 예전에는 내가 사는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삼분의 일이 미니어처 푸들, 삼분의 일이 미니 비숑, 삼분의 일이 말티즈일 정도로 특정 견종들이 많이 보였는데 요새는 우리 동네에도 동오와 비슷한 믹스견 아이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뼛속까지 진도믹스맘이라서 그런지 산책하는 진도 믹스견들만 보면 가슴이 울렁울렁하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렇게 또 한 마리의 진도 믹스 아가가 좋은 가족을 만나 구원받았구나라는 생각에 그 보호자분이랑 따뜻한 포옹이라도 하고 싶어 진다.
진돗개가 공격적이라고요?
진돗개 공격적이지 않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건 그쪽 생각이고요."
평생을 목줄에 묶여 살면서도 사람 손길이 그리워 사람만 보면 꼬리 치는 아이들이 진돗개인데 무슨 소리일까.
진도 믹스에 대한 무지와 편견들이 진돗개보다 더 공격적일 때가 많다. 진돗개의 피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다른 견종보다 더 예민하고 생존본능이 큰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진도 믹스견이 공격적인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사회화 시기를 제대로 보내지 않은 강아지는 꼭 진돗개가 아니더라도 다른 강아지에게 또는 보호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공격성을 띌 수 있다. '몰티즈는 참지 않기'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오히려 산책을 하다 보면 옆에 지나가기만 해도 으르렁 거리고 앙칼지게 짖어대는 소형견인 요크셔테리어, 말티즈, 푸들, 포메라니안 등이 더 많다. 소형견이기 때문에 덜 무섭고, 소형견이기 때문에 피해가 덜 할 거라는 생각에 안일하게 대처하는 견주(보호자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도 많이 봤다.
그러니 강아지의 공격성은 견종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보호자의 능력과 자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단지 몸집이 조금 크기 때문에, 더 위협적으로 보일 뿐이다. 그러니까 늘 그렇듯이 개는 잘못이 없다, 사람이 잘못일 뿐이지
실제로 동오는 전혀 공격적이지 않다. 오히려 공격적인 소형견들이 짖기 시작하면 무서워서 미친 듯이 도망가는 쫄보 of 쫄보다. 강아지 친구도 좋아하고 처음 본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래희망 남의 집 개인 똥강아지
실제로 동오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 보면 작고 큰 편견들에 마주치게 된다. 대충 적어보자면 뭐 이런 말들..
"그 개 줄 좀 짧게 잡아요"
(이미 짧게 잡고 있고 지금 1m 이상 떨어져 있고요.. 동오는 아무것도 안하고 서있기만 한 상황)
"아니 이 개를 집에서 키워요?"
(어디서 키우든 당신이 알바 아니고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보자마자 꺅 - "
(내가 당신 자식 보자마자 소리 지르면 기분 좋겠냐?)
"만지지 마 만지지 마 저 개 물게 생겼다"
(누가 허락도 없이 남의 강아지를 만지냐 그리고 내가 너 물어버린다.)
다양한 일화 중에서도 가장 화가 났던 일화가 있다. 4-5개월쯤 된 동오와 동네 뒷산으로 산책을 갔을 때인데 그날 산에서 푸들 한 마리를 만났다. 동오는 강아지 친구를 좋아하지만 혹시라도 싫어하거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상대방 강아지가 먼저 다가오기 전까지 기다리게 하는 편이라 그날도 푸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 동오는 으르렁 거리지도 않았고 달려들지도 않았고 그냥 앉아서 가만히 푸들과 인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푸들 견주 아저씨가 동오를 보고는
"쟤 무섭게 생겼다. 가까이 가면 물릴 것 같다."
하면서 자기 강아지를 질질 끌고는 그냥 지나쳐버렸다. 기다리고 있던 나는 민망하기도 하고 그 말을 나 들으란 듯이 하고 간 그 아저씨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서 인사하겠다고 기다리고 있던 동오가 짠하기도 해서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 지금까지 가장 후회되는 것은 그 순간에 그 아저씨한테 따끔하게 한마디 하지 못한 것이다. 글로나마 그 이상한 아저씨한테 한마디 하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
진돗개가 무슨 불가촉천민도 아니고
진도 믹스견을 키우면서 다양한 오해와 편견 속에 살아왔지만 가장 슬플 때는 진도 믹스라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할 때다. 많은 애견 운동장이나 카페 숙박업소들에서 진도 믹스를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믹스견이라고 하면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고 사진을 봤을 때 진돗개와 비슷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다른 강아지들의 안전을 위해서 맹견을 출입 금지시키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또 맹견이 아니더라도 공격적인 아이들은 출입 금지를 시키는 것이 백번 옳다. 그런데 진돗개는 맹견도 아니고 진돗개라고 해서 다 공격적이지는 않다. 아니 공격적인 포메라니안은 출입 가능한데 왜 순둥순둥 한 진도 믹스는 출입 불가능한 거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 까지 종으로 편파적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다.
강아지와 함께 가는 장소뿐만 아니라 동물병원, 강아지 미용 업소에서도 편견이 만연하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진도 믹스견을 키우는 지인에게 들은 너무 화나는 일화가 있다.
지인이 키우는 강아지가 갑자기 아파서 평소에 가던 동물병원이 아니라 근처 동물병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동물병원 수의사가(수의사라는 사람이) 홍코(빨간 코)의 진돗개는 공격적이기 때문에 진료를 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예전에 그런 강아지한테 물렸던 경험이 있어서 무섭다고.
(말인지 막걸리인지 그 강아지랑 다른 강아지고 전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수의사가 아니라 일반 사람이 그랬다고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무섭다고 생각하는 상황에 굳이
자발적으로 처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수의사는 아픈 동물을 진료하고 치료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 아닌가. 이건 무슨 의사가 진료 거부하고, 택시기사가 승차 거부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람..
진도 믹스를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이유
흔히들 진돗개를 어떻게 실내에서 키우냐고 반문하지만 직접 진도 믹스 강아지를 실내에서 키우면서 느낀 점은
실내에서 키우기 정말 좋은 개라는 것이다. 모든 진도 믹스견에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내가 느낀 견종의 특성은 그렇다. (물론, 강아지에게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쏟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
1. 진도 믹스 그러니까 진돗개의 피가 흐르는 아이들은 실외 배변을 한다.
동오는 산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3차 접종 이후부터는 실외 배변만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간 맞춰 무조건 산책을 시켜줘야 해서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이게 편해졌다. 우선 실외 배변을 하기 때문에 개 키우는 집이면 어디나 난다는 개 냄새가 나지 않고 배변패드 비용도 아낄 수 있다. 그리고 집뿐 아니라 '실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는 절대 배변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를 데리고 가더라도 배변 실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강아지 용품샵에 가거나 동물병원에 가서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동오는 실내에서는 절대 배변하지 않고 배변하고 싶을 경우에 밖으로 나가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는 편이다. 그래서 진도 믹스 강아지들은 하루에 2-3번 규칙적인 시간에 산책만 해준다면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낼 수 있다.
2. 헛짖음이 없다.
진도 믹스견들은 헛짖음이 거의 없는 편이다. 동오가 짖을 때는 딱 2가지 경우다. 누군가가 자기를 위협했을 때, 자기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침입자가 들어왔을 때 이외의 경우에는 거의 짖지 않는다. 무서워도 도망가기만 할 뿐 짖지 않는다. 다만 요새 좀 걱정인 것은 아이들을 싫어하기 시작했다는 건데 아마 아이들이 우다다 뛰어다니거나 꺄악~ 하는 소리를 지르는 것이 동오에게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짖는데 어떻게 교육을 시키면 좋을지 고민 중이다. 아이들이 무서워할까 봐 되도록이면 아이들이 많은 장소에 가지 않고 아이들을 발견하면 돌아가거나 줄을 아주 짧게 잡고 이동하는 편이니 혹시라도 길에서 아이를 보고 짖는 동오를 마주치더라도 너무 노여워 마세요.. 어머님들 제가 잘 붙잡고 가겠습니다.(ㅠ_ㅠ)
3. 독립적이다.
동오를 처음 데리고 왔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놀랍도록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강아지와 한 침대에서 자는 것은 수많은 반려인들의 로망인데 동오는 혼자 자는걸 더 선호한다. 내가 침대에 올려놔도 자기 침대로 가버리거나 내 손길이 닿지 않은 발 밑으로 가서 잔다. 안아주는 것도 쓰다듬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분리불안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펫시터에게 맡기거나 강아지 유치원을 보내도 적응 왕이다. 처음에는 조금 낑낑거리나 싶더니 내가 있든 없든 간에 강아지 친구와 간식만 있으면 세상 행복한 동오. 가끔씩 섭섭할 때도 있지만 내가 늘 동오 옆에 있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수많은 좋은 이유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진돗개라고 해서 진도 믹스라고 해서
마당에 짧은 줄에 묶어서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도 믹스라는 이유로 쉽게 버림받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하나하나 똑같이 예쁘고 똑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니까
모든 강아지들이 품종이 아니라
하나의 개체로 존중받고 사랑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강아지를 마치 자신의 전리품인양 사고 키우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반성하길 바란다.
강아지는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써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다.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 벌 받는다.)
수민
강아지 동오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본업은 기획자, 부캐는 동오 언니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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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
진도 믹스 시 고르자브종 스트릿 출신 강아지
동네에 모르는 사람과 강아지가 없는 핵인싸견
하루에 두 번 산책해도 지치지 않는 개너자이저
유전자 구성이 다른데 왜 언니랑 성격이 같은지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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