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JOE BLACK] 영화를 보면, 저승사자인 조 블랙(브래드 피트)이 잠시 이 세상에 내려왔다가 피넛버터를 맛보게 된다. 삶과 죽음을 알며 냉철한 조 블랙은 품위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숟가락을 핥아먹고야 만다. 사랑하는 여인을 영원히 떠날 때에도, 다가온 웨이터에게 피넛버터를 먹을 수 있는지 묻는다.
땅콩은 어릴 적부터 매우 흔한 식재료였다. 엄마, 아버지는 두어 고랑의 밭에 땅콩을 심었다. 알이 굵고 고소한 그 땅콩을, 얇아서 금방 타버리는 검은색 프라이팬에 넣고 조심해서 볶았다. 그러고는 부엌 뒷마당 문을 열어, 바람에 솔솔 식혔다. 땅콩을 좋아했던 오빠의 심부름으로 군소리 없이 볶았던, 착한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땅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외국에서 살다 보니,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마땅한 안주가 없어서 가끔 땅콩을 주문한다. 몇 달 전, 친구가 1kg짜리 피넛버터를 줬다. 싱크대 한쪽에 놓아두다 시리얼만 먹고 가는 아이 배가 고플까, 조각 빵에 발라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이는 그걸 꼭 먹고 갔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 피넛버터 병뚜껑을 열었다. 내일 아침 아이에게 주기 전에 맛보고 싶었다. 티스푼을 꺼내 맛을 보고, 곧바로 설거지통에 숟가락을 넣었다. 곧이어 아이들 이유식 할 때 쓰던 숟가락을 꺼내 또 한 숟갈을 먹었다. 순간 조 블랙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이번에는 아예 밥숟가락으로 가득 펐다. 그리고 오늘 다시는 먹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숟가락을 설거지통에 강제로 밀어 넣었다.
피넛버터는 볶은 땅콩을 간 거다. 땅콩은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이다. 오래전 남미 원주민들이 으깨서 먹던 방식과 비슷하다고 한다. 미국의 목화농장으로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지급되던 값싼 식량이었는데, 단백질 함량이 높아서 지금도 미국의 저소득층이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는 건 피넛버터 덕분이라고 한다. 피넛버터는 빵과 과일에 발라먹고 그냥도 먹는 어디에도 어울리고 사랑받는 미국의 요리이다.
피넛버터병을 앞에 두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앞쪽, 옆쪽, 뒤쪽 글자들이 흔들리게 않게 잘 찍는다. 그리고 번역앱을 열어 정보를 확인한다.
처음에 이 나라에 왔을 때는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았다. 거리를 오가며, 마트에서 궁금한 건 모두 사진으로 찍었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도 메모장에 적어뒀다가, 인터넷으로 내가 모르고 있던 여러 정보들을 확인했다.
요즘도 모르는 것들이 많지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것 자체가 귀찮아졌다. 그런데 오늘은 피넛버터에 대해 30분 이상을 검색하고 있다. 피넛버터가 맛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 [나무위키] 땅콩버터 정보 일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