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첫 소설책 <페터 카멘친트>를 읽고 있습니다.
주인공 페터는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여자에게 꽃을 주고 싶어 하지만, 에델바이스는 ‘향도 없고, 은빛으로 창백하니 어쩐지 넋을 잃은 것 같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더욱 아찔한 절벽에 피어있는 ‘알펜로제’ 꽃을 꺾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시작도 없이, 그녀의 집 앞에 꽃을 놓아두는 걸로 끝을 냅니다.
도대체 ‘알펜로제’ 꽃이 얼마나 아름답길래, 에델바이스를 저리 표현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찾아보니 자줏빛이 도는 분홍색 철쭉 같아 보였는데, 저도 이 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를 만났습니다.
< 녹슨 잎 알펜로제 > - 라이너 쿤체
꽃 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 핀다.
자갈 무더기 속에서도 돌 더미 속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괴테 할머니라고 불리는 전영애 교수님은 ‘녹슨 잎 알펜로제’가 전부 꽃이름이라고 했습니다. 고산에 피는 녹슨 잎 알펜로제 꽃은 2~3cm로 아주 작아진다고도 알려줬고요. 단단하고도 낭랑한 목소리로 천진하게 낭독하시는 모습에 어떤 위로와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혼자의 시간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저의 외로움과 친구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우리의 만남이 길게 이어져 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를 만나기보다 저 혼자 보낼 시간에 설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나의 재산, 내 경작지는 시간' – 괴테
이 시구를 발견하고는 많이 기뻤습니다.
내 시간을 잘 지켜내야겠다고, 그리고 그 시간을 문학으로 채워나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문학은 또 다른 문학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니까요.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성품을 지녀야 한다’라고 합니다. 좋은 글을 쓰시는 분들을 뵈면 모두 좋은 성품을 지니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전영애 교수님의 성품 또한 화면을 뚫고 나올 만큼 강직하고, 당당하고, 겸손하고, 따뜻함이 풍겼습니다.
저는 중년을 좋은 성품을 키우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뛰어난 학식과 경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가족과 친구들 곁에서 조용하지만 따뜻한 사람으로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도덕적인 사람으로도요.
피천득 수필가님의 글에서처럼, 고전을 통하여 숭고한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고, 상실했던 자신의 본성을 되찾기도 합니다.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더 나아가 아름다움을 발견하기까지는, 혼자의 시간과 문학작품 속의 서정적인 글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알프스 산맥의 고산에서처럼 보는 이 없어도, 나의 꽃을 피우고 지고, 또 피우고 지고,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