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ne Anne Mar 12. 2021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펼쳐보았다.
[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을 꺼내 이제야 찬찬히 읽고 있다. 2008년 9월쯤, 그분의 강의를 듣고 너무 재미있어서 바로 샀었다.
그리고 2003년 여름휴가길에 샀다고 적힌 [월든]도 작년에야 다 읽었다. 약 17년이 걸렸다.
어떻게 책 한 권 진득하게 읽을, 마음 하나 붙이지 못했는지 안타깝다. 고전이나 좋은 책들을 예전부터 많이 읽었으면 좋았을 걸, 아쉬운 마음이 든다.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때는 불안한 마음에 자기계발책을 읽었다.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다.
집과 마트와 갈 데가 없어서 자연을 찾아간 시간이 1년이 다 되어 간다. 아이들은 집에 있어도 쑥쑥 잘 자라고, 나는 예전보다 노화가 빨리 진행되는 듯하다.
보기 싫은 흰머리가 삐죽삐죽 나와있고, 눈은 왠지 지쳐 보이고, 눈가의 주름은 웃지 않아도 잡혀있다. 우리 딸이 태어났을 때, 양볼에 보조개가 세 개나 피어 있어서 신기하다, 했었다. 나도 없고 남편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다 며칠 전에야 양입을 꾹 다물고 위로 올려보았더니 숨어있던 보조개가 보인다. 나는 웃을 때 눈과 코에 주름을 만든다. 40대 중반에 신대륙 발견에 비견할 성과였다. 나도 우리 딸아이처럼 보조개가 있었는데 아무도 내 얼굴을 유심히 살펴봐 주지 않았나, 서운한 마음도 든다. 딸아이의 선명했던 보조개 두 개도 다소 흐릿해져 가기 때문이다.
예쁜 풍경을 찍다 카메라의 위치를 바꾼다, 내 모습이 나오게. 그리고 웃는다. 순전히 작위적이다. 그래도 표정을 이리저리 바꿔본다. 내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요즘의 내가 어떤지, 내 마음의 안위를 살펴본다.
13년 만에 다시 펼친 [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 책에는 그때 재밌게 들은 내용이 그대로 적혀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그분이 설사 영의정이라 하여도 사팔뜨기, 곰보, 부종 같은 환부까지도 그대로 그렸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유교를 공부해 오신 분들께는 얼굴의 생김새나 검버섯, 주름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으니 똑같이 그려, '내가 나' 이고자 하였다.
잘생긴 젊은 남자는 얼굴만 멋지고 정신은 아직 멀었으니 그릴 내용이 없어 안 그렸다고 한다. 학문과 수양, 경륜이 묻어나는 겉으로 쭈글쭈글한 늙어버린 노인만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진정으로 당당한 멋이다.
얼마 전에 친구와 만나 커피 한잔 사들고, 산책했다. 오솔길을 걷다 사진을 찍자고 한다. 아마 백설공주에 나오는 못된 왕비가 요즘의 앱들을 사용하면 온종일 자기 모습에 취해 있었을 것 같다. 그저 놀랍다. 나도 내 모습이 예쁘게 나와 오래간만에 흐뭇하게 들여다본다. 친구에게 보내달라고 당부하고 헤어졌다. 나는 멋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아녀자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려면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데, 내외하는 법도가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만약 그림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면, 내 그림을 보고 너무 완벽하게 솔직해서 마음에 들어했을 거라 생각된다.
내 핸드폰 사진첩에는 딸아이가 찍어놓은 셀카가 잔뜩 있다. 풍부한 표정, 앙증맞은 몸짓, 주렁주렁 매단 러블리한 장신구들이 참 화사하고 예쁘다.
나이가 들어가는 건 그래도 좋다.
사람을 보는 눈에도 또 다른 필터가 덧씌여지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라도 그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진솔함을 볼 수 있다.
옛 화가는 노인이 속에 껴입은 연분홍빛 한복을 비단에 몇 겹의 색들로 덧입혀 색이 아른아른 비치게 표현했다고 한다. 안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점잖고 고상한 아름다움, 그림에도 격조가 있었다.
은은하게 마음이 얼굴에 묻어나고 싶다.
우리의 미에 대한 좋은 책 한 권 읽었다고 아주 조그만 지식이 표 나지 않게 마음에 담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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