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주어지는 우리의 휴가길은 마치 여행사의 프로그램처럼 빡빡했다. 일주일 동안의 이동거리는 수천 킬로미터에 달했다. 매일 아침 짐을 쌌고, 매일 늦은 밤마다 다른 곳에서 짐을 풀었다.
어느 해인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남은 2박을 보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일정에 쫓기는 여행에서 해방되었다. 며칠 동안 남의 집이나 호텔을 내 식대로 꾸며놓고, 그 주변을 드문드문 여행했다. 모든 곳을 알 필요는 없었다.
식당도 이발관도 정육점도 구석의 꽃가게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 도시를 오래 떠나 있었던 사람들도 기억 속의 장소를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마트에서 글자를 몰라 뚫어지게 쳐다보다 아주 맛있는 고기를 맛볼 수가 있었다. 거리의 간판들을 그림으로 이해하다, 글을 조금 알게 된 후부터 글자로 읽게 되었다. 그 내용은 비슷했다.
주말에는 잘 알려진 곳으로 다녔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서 자정 가까운 시각에 집에 도착했다. 피곤이 쌓였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지리' 과목을 배우면서는 교과서를 펼쳐놓고 갈 곳을 정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이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공원에 커피 자판기가 있으면 장사가 잘 될 텐데, 사람들은 조금 떨어진 커피숍에 가고,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걸어간다. 더운 여름인데도 5분 정도 뙤약볕을 걸어가 긴 줄을 서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공원 바로 옆에는 맛있는 식당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 식당은 아쉽지가 않나 보다. 아이스크림은 후식 개념이다. 주문하면 접시에 담아준다.
상업적인 이유가 제1순위에 있지 않을 때, 조금은 불편하지만, 기꺼이 감수하는 모습이 나름 보기에 좋다. 어느새 나도 이 사람들을 따라가게 된다. 때로는 알면서도, 때로는 모르는 채로.
병원에서 몇 시간 째 기다린다. 병실 앞에는 내 차례를 보여주는 전광판이 없다. 물어볼 간호사도 없다. 간호사는 진료실 문 속에 꼭꼭 숨어 있다 환자를 부르고는 바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다 겨우 붙잡고 물어본다. 아주 불친절하게 모르는 언어로 말하고는 돌아선다. 보다 못해 묵묵히 기다리던 다른 사람이 그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나는 또 다른 곳으로 가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린다.
무지해서 느린 이때에는 화가 나고 만다.
집에 돌아가서, 뒤늦게 애꿎은 가족들에게 화를 내본다.
2년 전 뵌 우리 엄마 아버지의 모습과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서로에게 과거의 기억에 머물러 있다. 엄마, 아버지는 조금 더 젊고, 우리 아이들은 좀 더 어리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 기다란 트롤리버스 운전사는 멈춰서 부드럽게 손짓을 한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아름다운 한 엄마는 걸음을 서두르지 않는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는 3년의 마주침이 필요했다. 말이 통하는 그녀도, 말이 안 통하는 그녀도. 그동안 바쁜 사람들은 다 떠나갔다.
늘 느림이 못마땅하던 나는 이제야 나의 성격이 느리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젊음의 시절보다 중년의 시간을 더 사랑하는 이유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다 봄이 왔다고 그러던데, 나는 아직도 추운 이곳의 어디쯤 머물러 있다.
봄을 먼저 맞이한 사람들이 짧은 봄을 아쉬워할 때, 그때는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봄도 느려 봄인 줄 모르고 있나, 걱정된다.
봄을 조금 아는 나는 오히려 마음이 조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