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이발

( pixabay 이미지 )

by Jane Anne


아들의 머리는 빽빽하다.
빈틈이 안 보여 머리카락도 두피도 모두 까만색으로 보인다. 또 머리카락은 어찌나 단단하고 굵은 지, 가위질 소리도 경쾌하다.
반면 남편의 머리는 듬성듬성하다.
두피는 스트레스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고, 머리카락은 한 줌 손에도 맥없이 미끄러진다.

이십 대 시절, 그의 머리카락은 반들반들 윤기가 나고, 숱이 많았다. 까만 머리칼들이 있었기에 그의 넓은 이마는 더욱 멋져 보였다.

지금은 샤워실 숫제 구멍으로 내보낸 머리카락들이 흘러간 시간과 함께 흩어지고 말았다. 드문드문 하얀 머리카락이 새로 자라 있다.

남편은 자신의 머리를 엄청 소중하게 다룬다.

머리가 긴 나보다 드라이기를 더 오래 사용한다.

헤어 에센스는 남편의 화장품이지 나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남편의 머리칼을 잡고 뒤흔들게 되었다. 평상시 같으면 절대 그럴 기회를 주는 사람이 아닌데,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미용실도 몇 달 동안 문을 닫고 있으니 본인도 별 수가 없었나 보다.
나는 기쁨 반, 두려움 반이다. 이 사람을 어떻게 골탕을 먹일까, 하는 기쁜 마음과 진짜 이상하게 자르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있다.

여러 영상을 찾아봤다. 그리고 가위와 이발기를 천천히 집어 들었다. 나에게 잘한 것이 많지 않은 남편의 입은 다물 줄을 모른다. 이때다! 그냥 싹둑, 잘라낸다. 그동안 한국 미용실을 다녀와도 늘 불만이었던 눈을 찌르는 긴 앞머리도, 내 맘에 들게끔 짧게 자른다. 남편의 불안감은 점점 커진다. 옆머리는 제발 봉긋하게 뒷 머리는 상관없다고 한다. 나도 그 부분은 지켜주려고 했다. 하지만 옆머리는 자꾸만 각이 지고, 양쪽의 균형 또한 맞추기가 힘이 든다.
어찌어찌 잘라주고, 욕실에 잔뜩 어질러진 머리카락까지 정리한다. 그런대로 괜찮았나 보다.

두 번째 기회가 왔다.
기세가 등등해진 나는 기분이 정말 좋다.

가위가 춤을 추다, 그만 망해버렸다. 폭풍 잔소리가 쏟아진다. 조용히 뒷정리를 마친다.
남편도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빨리빨리 자라기를 기다려볼 수밖에.

사실 나는 오랜 경력의 미용사이다.
아들과 딸, 나의 머리는 모두 내가 자른다.


아들은 곱슬머리이다.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만 있어 몇 개월을 방치했더니 브로콜리처럼 부풀어올라 잘 자라고 있다. 키가 실제보다 10cm는 커 보인다. 짧게 다듬어 더니 다시 작아졌다.


긴 머리를 좋아하는 딸아이를 설득해 백설공주와 조금 비슷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앞머리를 내어주고 단발로 잘라준다. 짧아진다고 싫어하던 아이가 나름 마음에 들어한다. 하지만, 뒷머리는 조금 삐뚤 하다.


한 해에 한국에서 염색하고 파마하고 잔뜩 멋을 부리고 왔더니, 머리카락이 인형 머리카락처럼 변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내 머리도 내가 자르기 시작했다. 짧은 단발에서 중단발까지 모두 가능하다. 충 층을 내주면 괜찮아 보인다.

남편 포기했다. 그런데 세 번째로 부탁한다.
이 시국은 자꾸만 나에게 기회를 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돈을 버는 프로가 되었다. 고작 15유로이지만, 그걸로 딸아이 선물을 사 줬다. 돈은 돌고 아 내 기분도 두 배쯤 좋게 만든다.

얼마 전 나는 코로나 검사소에서 머리가 아주 장발인 한국 아저씨를 보고 말았다. 가 이상하게 잘라도 자꾸만 부탁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참 다행인 건, 남편의 머리도 자른 뒤 일주일이 지나면 나름 괜찮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몰랐었다.

새삼 남편 머리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만지다 보니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타국에서 세 명의 식솔들이 매달려 있으니, 참 힘들었겠다는 마음이 이제야 올라온다. 아마도 우리의 관계도 한 단계 성장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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