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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May 27. 2021

오래된 성(old castle)


오래전 ,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집과 가까운 20여분 거리의 성에 갔었다. 가파르지만 길지 않은 길을 따라가다 다시 굽어진 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입구가 보였다. 가이드와 함께 단체관람만 허용되다. 언어 통하지 않아 뒤에 남겨진 나는 감각을  총동원해 그냥 느끼기로 했다. 부서져 내린 돌들, 군데군데 뚫린 창틀,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 어떻게 이곳으로 돌들을 옮겼는지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그리고 그땐  하루 종일 뭘 했는지  궁금해다. 난간을 따라 올라가는 계단은 아래가 뻥 뚫려있어 조심조심 올라가야 했고, 중간중간 고개를 숙이며 공간을 이동해야만 했다. 가파른 산비탈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성은 아래로 강물과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였다. 마지막 방에서 한 남자가 피아노를 연주해줬다. 돌 사이로 갇힌 성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는 잠시 현재의 시간을 잊게 만들었다.  

그 성 앞으로 오랫동안 수없이 많이 지나다니게 되었다.



얼마 전, 우연히 검색해서 가게 된  성이 있었다. 처음 갔던 성의 맞은편에 도로와 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산 위의 그 성은 아주 많이 낡고 허물어져 보였다. 흔적만 겨우 남은 껍데기라고 생각했다. 이름 또한 '오래된 성'이다.


그런데, 그 성을 찾아가는 길을 내가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시속 50km로 천천히 몇몇 작은 마을들을 지나 아무 곳에나 대충 주차를 해 놓고 내리니 바로 산과 연결된 길 위의 길이었다. 나는 이 참 좋다. 넓은 주차장을 지나 뭔가를 보기 위해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여정은 처음부터 지루함을 느끼게 한다. 이 길은 처음도 끝도 아니다. 그냥 시작된다. 넓고 평평한 흙길이 있고, 옆으로는 물결치는 강이 흐르고 있다. 기차가 가끔 지나다니고 사람들이 오갈 수 있게 연결해 놓은 다리도 보인다. 여름에는 전통복장을 한 사공이 뗏목을 띄우기도 한다.  


걸음걸음을 온전히 느끼며 길 따라 걸어간다.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어떤 풍경이 나올지 하나도 알지 못한다. 조금 더 들어가자 나뭇가지를 주워서 소시지를 구워 먹을 수 있는 큰 화로가 있고 그 옆으로는 원두막 같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아이들이 매달려서 놀 수 있는 줄이 나무에 매어져 있다. 산길 따라 시냇물이 졸졸 흘려내려 간다. 작은 지붕 아래에는 맑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컵이 놓여 있다. 오른쪽으로 성이 조금씩 보인다. 오며 가며 한 시간은 충분했고 이 길의 마지막은 비탈져서 지루하지도 않다.


올라가니 작은 샘이 있고, 성은 허물어진 채 아직도 건재하고 있었다. 돌들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주의하라고 한다. 그렇다고 내가 피할 수는 없다. 그냥 돌들이 그 순간 붙어있기를 아니면 내가 지나가고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떨어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조심조심 올라가니, 가슴이 뻥 뚫린다. 이런 좋은 곳을 이제 와 보다니, 내가 참 바보 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


길이 시작될 때 봤던 강이 거칠게 흘러가고 강한 바람은 허물어진 성에 꼭 붙어서 이동하게 만든다. 성의 가장 위에는  아주 고요한 곳 마치 동굴 같은 아늑함과 정적이 흐르는, 바람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 곳에서 불을 지피고 먹을 거 먹고 쉬었나 보다.



너무 좋아, 가까운 친구들에게 아주 비밀스럽게 전해주었다. 가끔은 내가 좋은 게 부풀어져서 남들에게는 안 좋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좋다고 소문이 나우르르 몰려다니는 탓에 나의 보물 장소를 빼앗기기도 한다.


다행히 한 친구도 너무 좋았다고 한다.
평일 우리는 단단히 준비했다. 사실 먹을 것만 잔뜩 챙겼다. 커피와 빵, 과일과 구워 먹을 소시지 그리고 불을 피울 종이와 성냥을 갖고 갔다. 아이들을 급히 학교로 보내버리고, 8시 즈음 만남의 장소에서 합류했다. 너무 기대되는 짧은 여행이었다.


주말 하고는 다르게 아무도 없었다. 수다를 떨면서 밟는 흙길은 가볍게 통통 튄다. 순간 우린 멈칫한다. 불을 피우는 곳에 한 아저씨와 사납게 생긴 개가 있다.  차라리 아무도 없는 게 낫지 누군가 있는 건 마음에 걸린다. 발걸음을 서두른다.

그런데 도마뱀을 만났다. 비가 온 후라 어두워진 흙 색깔에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까만 몸에 노란 점이 있는 살라만드라 도마뱀이 악어처럼 곳곳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사람 때문에 놀란 발걸음이 살라만드라 때문에 더욱 놀라  큰 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진다. 아저씨는 천천히 우리를 따라 걸어오고 있다. 흠칫흠칫 뒤로 돌아보며 마지막 비탈진 언덕으로 올라간다. 아저씨는 갈림길에서 잠시  벤치에 앉아 있다가 결국 우리와 같은 길을 선택했다. 트라우마를 가진 한 친구가 돌멩이를 집어 들고 우리는 그냥 되돌아오기로 했다. 한 순간은, 한 점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한다. 가슴이 오그라진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표를 내면 오히려 표적이 된다. 다행히 아저씨는 사나운 개의 목줄을 짧게 잡아주고, 씩 웃어준다. 목의 문신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거친 눈빛은 그대로 내뿜어진다. 몇 번을 뒤로 돌아보면서 잰걸음으로 돌아 나왔다. '오래된 성'을 눈앞에 두고도 못 본 아쉬움이야 있지만, 차로 돌아오니 그제야 다리가 풀려버린다. 행복한 피크닉을 위한 먹거리들은 그대로 가방에 매달려 있다.


단지, 평일에도 한가한 우리들만 혼쭐이 나고 말았다. 평범한 한 사람을 무서운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성'을 주말에 다시 가봐야겠다.

십 년 만에 발견한 이 곳이 더욱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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