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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May 30. 2021

초록( Green )

spring green, leaf green, apple green,,,


초록색은 종류도 많다.
초록빛 나뭇잎들이 어우러진 숲의 초록색, 풋사과와 올리브의 엷고 떫은 듯한 초록색  그리고 에메랄드빛  바다를 품은 비취색이 밖으로 나가면 눈길 닿는 곳마다 가득하다.
이 초록색은 과연 명명된 이름이 있을까? 꽃들이 지고 난 자리에는 뭐라 불러야 좋을지 모를 저마다의  초록빛이 움터서 자라고 있다.

봄은 쏜살같이 물듯이 다가오더니, 다시 저 깊은 곳으로 아득히 먼 곳으로 밀려나 버렸다.
그 자리에  "조화롭고 안정적인 삶을 선호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정적인 사람"1)이 좋아하는 초록색이 찾아왔다.

내 마음도 요즘은 그렇다. 편안하고 고요하다.
강제로 차단된 환경 덕에 사람과의 갈등 또한 전혀 유발되지 않았다. 집안에서 아이들하고 실랑이를 벌이는 게 전부였다.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어쩌다가 마음 맞는 친구와 근처 숲을 걸어 다니는 것도 그냥 걷고 싶어서 걷는다.  예전에는 마음이 힘들면 걸었다. 그러나 편한 요즘도 그 길을 걷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상쾌해진다. 초록빛 속에 담뿍 담겼다가 빠져나오는 기분이다.

아주 어릴 때 그리고 20대까지도 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불행에 눌러져 옴짝달싹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의 키가 자라 잠시 그 운명을 가둬둘 수 있게 되었다. 상쾌한 바깥공기를 받아들여 쉴 수가 있게 되었다.

이 곳에 산 지가 10년이 되어서 그런가, 어중간하게 5년, 7년 하면서 그냥 넘어갔던 일들이 막상 10년 하면 쉽게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처음엔 적응한다고, 그다음엔 아이들이 어리다고 그리고 또 다음엔 이제야말로 육아에서 해방되었다고 등등 이런저런 이유만 늘어놓고 살고만 말았다. 영어도 이 곳의 언어도, 때로는 한국어도 어눌해지고 말았다. 남들에게 내세울만한 조건은 하나도 업데이트하지 못한 채,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하지만 주부 경력 10년은 내 마음의 키를 그 어떤 시절보다도 크게 키워놓았다. 신체의 키는 딱 5cm만 더 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바라본 적이 있지만, 마음의 키는 앞으로 얼마나 계속해서 자랄까? 궁금해진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된다면 작은 것에도 참 행복할 것 같다. 어느새 풍성해진 큰 나무의 잎들 사이로 들어가자 새둥지가 보인다. 어미새와 아비 새는 같이 날아와서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는 다시 날아간다. 리고 참 미안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찾아갔지만 아기 새둥지는 더 이상 이지가 않았다..

큰 나무는 꼭 숲 속 같다. 여러 새가 푸드덕 날아다니고, 셀 수 없는 많은 꽃과 잎들을 동시에 피워서 풍성한 그늘을 만들었다. 하늘 높은 곳까지 다다른 나무지만, 땅 가까이에도 잎들을 내려뜨려놓았다. 나무기둥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아래에는 하얀 꽃들이 펼쳐져 있다. 나뭇잎들은 나를 외부 세상에서 끌어와 포근히 안아준다.

지금은 낯선 인간이지만, 어느 날 문득 자연이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될 날이 올 것 같다.



땅 위로는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이 큰 성취에 취해 자꾸만 엄마의 손길을 뿌리치고, 올려다본 하늘에는 이제 막 비행을 시작한 몸짓이 작은 새들의 날갯짓이 가볍고 자유롭게 느껴진다. 바람에 나부끼는 초록 날개를 가득 매단 나뭇가지들은 그들의 비상착륙 대가 되어준다.

어릴 땐 부모를 따르느라 나를 고민하지 못했다. 내가 나인 듯했지만, 나는 아주 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는 아이를 따라주느라, 깊이 있는 나를 만나러 내려가지를 못했다. 조금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오기가 일쑤였다.

마음의 키는 그동안 몰랐던 삶의 깊은 곳까지 깨닫게 해 준다. 한없이 슬픔의 늪으로 빠져들게도 만든다. 똑같은 사람을 보더라도 그 속에 담긴 따뜻함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만 자라라고 했으면 좋겠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고통은 외면하고 싶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정적인 사람에게 "활기와 상쾌한 이미지를 주고 싶을 때는 노란색을 더하면 매우 좋다"2) 고 한다. 오랜만에 달릴 수 있게 된 고속도로를 지나며 마음에 활기를 띄워본다. 노란 민들레와 끝도 없이 펼쳐진  유채꽃밭을 놓칠세라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다. 유채꽃의 비릿하면서도 달곰한 향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진다.
고통은 잠깐 다가오지 않고 기다려준다.







큰 따옴표 1), 2) -  네이버 지식백과 [ 일 잘하는 그녀의 컬러 스타일북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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