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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Jun 08. 2021

나물에 대하여


매년 3, 4월이 되면 아스파라거스를 마트에서 사 먹는다. 올리브 오일에 마늘을 넣고 살짝 볶아 먹는다. 몸에 좋다고는 하나, 내 입에는 맞지 않는다. 나머지는 남아있던 간장 장아찌 물에 담가버린다.


내 머릿속에는 봄의 향취들로 가득한데 마트의 식자재는 일 년 내내  비슷하다. 어릴 때 경험했던 맛의 기억들은 숨어있다 나타나, 갈수록 더욱더 진해진다. 대화의 반은 먹고 싶은 것들에 대한 푸념이다.


요즘 내 눈은 왕방울만 해졌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 앞 인도 옆으로 냉이꽃이 활짝 폈다. 하얀 꽃들을 보고서야  알았다.

햇볕이 따뜻한 겨울날, 젊은 엄마랑 어린 언니들이랑 쪼그려 앉아서 냉이를 캤었는데, 몇 년을 모른 채로 지나치다 그 꽃을 보고 너무 놀랐다. 아니면  지난해에 바람 따라 이곳으로 왔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가 근처의 달래 서식지를 알려 주고 갔다. 귀하게 간직하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찾아갔다. 모종삽으로 파보니 흙 아래는 여기저기 덩굴 뿌리가 한데 어울려져 파기가 퍽 힘들었다. 파다 보면 지렁이가 꿈틀대고 있었다. 그 달래를 먹고자  낑낑 대다, 징그러워서 소리 지르다 겨우겨우 캐서 왔다. 된장찌개에 은은하게 퍼지는 한 움큼의 달래 향에 마음이 채워졌다. 달래를 다시 캐러 가지 않아도  충분했다.


참나물이 있다고 한다.

한 친구가 시내 쇼핑몰 근처를 걷다, 길가에서 한 줄기 길게 뜯어서 보여준다. 오스트리아에 사시는 한국분이  참나물의 특징을  유튜브에서 자세히 알려주셨다. 그러고 보니 산책하는 길가에도 우리 집 근처에도 참나물 군락지가 있었다.

계속해서 오는 비에  잡초가 무성해졌다. 나와 상관없었던 그곳에 잡초에 불과하던 참나물이 반짝반짝한다. 그런데 너무 크고 많아, 그만 그 기세에 눌려 버렸다.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그래도 계속 생각난다.

아직 완전한 확신은 없어 몇 번을 망설이다 조금 뜯어 왔다. 끓는 물에 데친 후, 삼삼하게 소금으로 간해서 한 입 맛을 봤다. 향긋한 향이 내 기억과 만난다.  행복하다.



참나물을 뜯다 옆의 풀이 익숙해  냄새를 맡아보니 이건 또 쑥이다. 크기가 커서 조금만 뜯어도 한 주머니 가득하다. PlantNet앱으로 검색해 보니 쑥이 맞다. 그래도 겁이 나,  '유럽 쑥'으로 다시 찾아봤다. 고흐가 즐겨마신 압생트의 초록빛 원료로 쓰였다고 한다. 독성과 쓴맛이 강하고, 환각과 발작을 일으켜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게 한 원초였다.

먹을까, 말까? 정신없는 검색에 먹어도 된다는 글을 발견하고서야 겨우 멈춘다. 당장 쑥을 데치고 쌀가루를 꺼내 익반죽을 해서 찜기에 쪄낸다. 다행히 쑥이 쓰지 않다. 아이들도 한 입씩 받아먹는다.



나는 아주 용감해졌다.

머위로 보이는 잎도 뜯었다. 뒤로 돌려보니 하얀 솜털로 소복이 덮여있다. 줄기를 꺾어 쭈욱 솜털을 벗겨낸다. 금세 손가락 까맣게 풀물이 든다. 물든 손가락을 바라보다, 어느새 세월이 훌쩍 흘러 내가 어릴 적 바라봤던 그 시절의 '엄마'가 되었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맛과 향이 비슷해도 기후와 토양이 달라 조금씩 잎모양이 다르지만, 그 뿌리는 변함없이 같다.


달래, 참나물, 쑥.

소리만 내어도 향기로운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탈 나지 않고 아직  괜찮은 걸 보니, 오히려 건강해진 것 같다.


내가 오랫동안 이 곳에 머물면서 그리워하던 것들이 이제야 내 눈에 보여진다. 바로 가까이에서. 자연의 선물을 한꺼번에 받은 나는 어리둥절하다. 나는 운세가 아주 좋아질 모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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