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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Jul 13. 2021

여름밤


일이 있어 두어 달 만에 같은 고속도로를 다시 타게 되었다. 4월 말에 지나쳤던 유채밭은 어느새 갈아엎어지고, 옥수수와  해바라기 꽃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여름이 아름다운 이유는 짧은 밤 때문이지 아닐까 한다. 흐릿한 먹색의 밤은 여름을 잠시 차지할 뿐, 새벽은 바로 찾아온다.

북쪽 나라들의 밤은 희뿌연 낮 같다.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은 두터운 커튼을 치고 잠을 잔다.

그러나 여름 바다를 찾아가는 사람들은 천진스러운 아이가 된다. 밤의 파도는 한껏 격이 높아진다.

사각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가 오르간을 연주하는 그 여름밤, 아름다운 모래성 같은 추억이 자꾸만 쌓여간다.




수확기를 갓 지나 누른 밑동만을 남겨놓은 밀밭은 초록색의 옥수수밭과 노란 해바라기 꽃밭이 어우러져 성당의 첨탑 아래 마을을,  평화롭게 보여준다.

태양은 마지막까지도 강렬하다.

솟아오르는 태양인지 가라앉는 태양인지 헷갈린다.

뜨거운 열기에 달아났던 구름이 낮게 내려온다.

가는 해를 향해 수만 그루의 해바라기 꽃들이  같은 방향으로 돌아섰다. 태양만을 바라보는 순수한 지조와 절개에 나도 그만 숙연해졌다.

여름날의 뜨거움을 잊고 싶었던 나 또한 지는 해를 붙잡고 싶게 하는 강렬한 의식이었다.

단 한 송이의 꽃이 나의 꽃이 될 수 있을 지라도,  오직 불타는 태양만이 수만 그루를 거느리는 당당한 주인이 될 수 있다.




여름밤,

숨 돌릴 가벼운 바람이 없었다면 더운 짜증은 쌓여갔을 것이다. 서늘한 여름 밤바람이 좋다. 그 바람에 벌레소리가 묻혀오면 여름은 서서히 가신다.

7월의 어느 날, 자정이 지나고 별들을 얘기하던 목동의 어깨에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머리가 사뿐히 내려온다. 아름다운 생각만을 하며 지새운 그 밤에 진짜 산의 요정들이 내려왔을지도 모르겠다.

여름밤을 초원에서 지새울 수 있다면,

나도 목동처럼 깨끗하고 예쁜 마음을 지닐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별을 바라보던 내 어깨에는 스테파네트 아가씨 보다도 가볍고 보드라운 두 아이의 머리가 내려앉을 것 같다.

'별'을 꿈꾸면서...


곧 희뿌연 새벽이 찾아올 거다.

여름밤은 짧고도 꿈같은 밤이다.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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