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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May 29. 2022

명이나물


나에게는 집념이 강한 친구가 한 명 있다. 뭔가에 생각에 미치면 한동안 그것에만 집중한다. 운동에 관심이 쏠리면 아이들에게 몇 가지 운동을 동시에 시키고, 영어교육에 눈을 떴을 때는 하루에 몇 시간씩 영어에 노출시켰다.  그런 친구를 나는 놀림의 대상으로 삼고, 나와 상관없다는 듯이 동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번에는 나를 집념의 현장으로 데려가 줬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무도 찾지 못한 그리고 얘기조차 들어본 적 없는 이곳에서 그녀는 한 번의 답사로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그랬다. 내가 사는 곳 주변으로도 바로 '명이나물'이 존재하고 있었다. 근처 다른 도시나 한 시간여 거리의 체코에서는 봄마다 명이나물을 채취하러 간다고 들었다. 알음알음 얻은 나물을 나에게 주는 친구도 있었고, 마트에서 한 움큼에 2~3유로로 절대 싸지 않은 가격에 사 먹기도 했었다.


너른 산 중턱에 누가 가꿔놓은 듯이, 명이나물이 소복이 자라고 있었다. 자연에서는 이렇게 생겼구나, 처음 보는 경이로운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입은 채 다물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손은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 행동이 매우 굼뜨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물을 뜯어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었다. 갖고 온 지퍼백에 뻑뻑하게 대충 집어놓고, 친구가 준 커다란 비닐봉지에는 끝도 없이 들어간다.


이제는 포기다. 나물만 보며 걸음을 옮겼는데 어느새 깊이 들어왔고, 그 많은 나물을 도저히 다 뜯어갈 수는 없었다. 군데군데 채워놓은 봉지들을 모아놓고 보니 아뿔싸, 명이나물은 숨도 죽지 않고 뻣뻣하고 곧기만 하다. 배낭에 아무리 쑤셔서 넣어도 도로 나와버렸다. 결국 대충 집어넣고, 양쪽 어깨에 짊어지고 내려오려니 어깨가 뻐근해지는 게 꼭 지게꾼이 된 것 같다.


이곳에서는 명이나물을 '곰 마늘'이라고 부른다. 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가장 먼저 먹는 것이, 바로 명이나물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구글로 검색해 보니, 몇 가지 팁이 뜬다. 내년 봄을 위해 줄기 2개 정도는 남겨놓고, 채취 시 불필요하게 밟지 말며 고리버들 바구니에 담으면 켜켜이 쌓기  편하고, 손상도 적다고 한다. 이런 줄도 모르고, 비닐봉지를 들고 일정 부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왔으니 내내 마음에 걸린다.


심마니들은 산에 들어갈 때 산신령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들었다. 우거진 나무 그늘에 햇살이 드문드문 비치고, 한 차례 약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금세 갠다. 잔뜩 내려앉은 노란 송진가루가 씻겨 나가고, 산새들은 더욱 청량하게 지저귄다. 숲 속에 '똑, 똑' 명이나물 뜯는 소리만 들린다. 내 그리움은 알싸하고 은은한 마늘향에 스며들고, "감사합니다"라고 자꾸만 읊조리게 되었다.


김치와 간장 장아찌 한 통씩을 담아내고, 페스토는 작은 유리병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다. 조금 남겨, 된장국과 무침을 해 먹었다. 잎만 떼서 파는 풋내 나는 시금치만 먹다, 입안에서 씹히는 달큼하고 뭉툭한 맛이 봄맛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몇 되지 않는 소중한 친구들에게도 한 봉지씩 돌렸다.

어쩌다 보니 유럽에 와서 시골생활을 하고 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꼭 내가 우화등선(羽化登仙)이 된 듯하다.








( 2022 봄,  명이나물. 참나물. 달래. 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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