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나의 고향이다.
만약 내가 바다만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면, 나는 또 산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아드리아 해를 만날 수 있다. 위로 올라가면 한 나라의 거의 끝쯤에서 발트해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두 바다 모두 쉬지 않고 달려도 약 8시간이 넘게 걸린다.
이 나라의 많은 사람이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아래로 떠나갔다.
그래서 나는 위로 가 보기로 했다.
바다에 도착하기 4분 전, 아직도 내 눈에는 도로와 집들과 숲만 보인다. 설렌다. 2년 전 푸른 동해를 보고 떠나온 후, 바다를 보는 건 처음이다.
바다, 바다...
그리움과 울컥함과 감동이 밀려온다.
파도는 가볍고, 바다색은 검으며 갈매기는 아주 크다. 발트해의 사람들은 키가 크고 머리카락은 햇살에 비쳐 투명하다. 그들도 동해의 사람들처럼 수영하고 모래사장을 거닐며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는다. 수건 한 장을 깔고 앉았을 뿐인데, 어느새 익숙한 바다가 되어 버렸다.
계속 앉아있고 싶었지만, 결국은 이 바다에서도 길은 떠나야만 했다.
13세기 독일 기사단이 세운 성벽이 남아있는 곳, 폴란드의 한 도시에 도착했다. 도시 곳곳에는 허물어진 성벽 위에 옛날 옷을 입은 기사들이 여전히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
풍요로웠던 옛날, 꿀과 동양의 여러 향신료로 만들어진 생강쿠키가 여행객들을 사로잡았다.
만지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동상들이, 많은 도시에 있다. 이 도시에도 강아지 필루스와 당나귀와 개구리들이 황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어느 날, 새로 이사 온 마녀가 마을 사람들의 홀대에 화가 나, 개구리를 풀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바이올린을 켜는 소년이 나타나 개구리들을 숲 속으로 모두 데려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도시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약 500년 전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의 생가가 광장 뒤편에 있고, 그의 동상은 광장에 우뚝 서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과 공동묘지가 있다. 한 남자가 노란 국화 다발을 안고 걸어간다. 근처 가게에서 초와 조화를 사고 있는 한 여자도 보인다.
그들이 그리울 땐 있는 모습 그대로의 차림으로 길을 건넌다. 산책하듯 다가가 마음을 놓아두면 어디선가 나만 알아챌 수 있는 바람이 불어온다.
일어나서 다시 일상을 살아낸다.
언젠가 하늘에서 내려다본 그곳은 많은 촛불들이 한꺼번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마치 부드럽고 그윽한 새로운 별들이 되어, 사람들 곁에서 깜박이는 것 같았다.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 지금, 모든 것들이 꿈속 같고 아련하다. 내가 그리워하는 이들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지금도 그대로 있는지,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다. 어릴 적부터 한 번도 바뀌지 않은 한 번호를 누른다. "여보세요?"... 이 한 마디에 다행히도 꿈에서 깰 수 있었다.
옛사람들은 이 도시를 지키는 기사로, 지구가 움직이는지 태양이 움직이는 지를 놓고 격렬한 종교재판을 하던 수도사로 또는 향긋한 생강쿠키를 파는 상인이 되어 살았었다. 현재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광장이었던 곳에서 옛날의 삶을 곳곳에 펼쳐놓고 여행객들과 만난다. 어쩌면 그들은 몇 백 년을 함께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화선을 통한 목소리만을 붙잡고,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한 걸음만 떼면 폴란드와 체코로 갈린다. 작은 마을의 국경은 좁은 간격으로 주차봉을 박아놓고 겨우 승용차 한 대가 통과하게 만들어 놓았다.
경계를 나누는 건 때로는 너무나 간단하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무수히 오가고 있었다.
잠시 다른 곳으로의 이동 또한 나의 일상이기도 낯선 여행이기도 했다.
(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 그러나 마을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