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선물

by Jane Anne


밤새 눈이 내렸다.

전날 밤에 소리 없이 눈이 내리기 시작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우리가 저녁을 먹고, 아이들이 잘 준비를 하고, 내가 집안일을 마무리하는 동안에도 눈은 계속해서 내렸다. 늦은 새벽에서야 눈은 그쳤다. 그러고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 하고 누군가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만 같다.


"애들아, 눈이 왔어, 눈이 엄청나게 쌓였어!" 하고, 혼자 부산을 떨었다. 아침 7시 40분, 이미 제설작업이 잘 마쳐진 도로와 인도를 제외하고는 하얀 눈은 내려진 채로 소복이 쌓여 있었다.

아이 손에는 가방을 쥐여주었다. 그 가방 속에는 털모자와 방수장갑 그리고 방수 바지가 있다. 친구들과 깔깔거리면서 눈과 놀고 있을 것이다. 두어 시간 놀더라도 내가 데리러 가면 아쉬워할 것이다.


내가 언젠가 이 도시를 떠나게 된다면, 그리울 대상 중의 하나는 하얀 눈일 것이다. 다른 나라나 도시를 방문한 후, 이 도시에 가까워지면 너른 하늘 아래 짙은 구름이 깔려있는 걸 늘 볼 수 있다. 흐린 날도, 비 오는 날도 그리고 눈도 많은 도시이다. 붙박이처럼 스키장이 옆에 있 작은 마을도 많다.


내게 눈에 대한 추억은 대부분 이곳에서의 기억이다. 어린아이들과 눈에서 구르고 놀던 기억들이 순수하게 쌓여간다. 눈이 좋다.

어릴 적 내 고향은 눈이 거의 오지 않았다. 어쩌다 눈이 많이 온 날, 창고에 있는 비료포대를 들고 산골짜기로 올라갔다. 겁이 많은 나는 언니 허리를 꼭 안고서 경사 급한 길을 내려왔다.

대학을 들어가고 처음으로 짝사랑했던 남자애랑 친구랑 운동장에서 신나게 눈싸움을 했다.

그리고 회사에 다니던 중, 서울에 폭설이 내렸다. 걷다가 겨우겨우 온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이 난다. '서울'은 이제 내게 '파리'나 '로마'처럼 로맨틱한 도시가 되었다. 쉽게 갈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한 도시로, 내 젊은 날의 기억들이 묻혀있는 도시로 남게 되었다.


밤새 완성한 순백의 눈으로 덮인 풍경에 뭉쳐져 있던 마음이 사르르 녹고 눈물이 맺힌다.

하룻밤 사이에 눈으로 변한 세상 속에서 나는 난쟁이가 되었다. 작은 발자국들을 찍으며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 하얀 세상은 끝이 없다. 의 마음속 검은 그림자들은 작은 티끌만큼도 아니게 되었다. 흰색의 공간 속에 갇혀버렸다. 산뜻하고 상쾌한 공기가 시원하기만 하다. 음소거된 세상의 소리신 눈 밟는 소리만 들린다.

축 처진 나뭇가지의 눈을 털어주었더니 용수철처럼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주인이 풀어준 목줄에 훈련이 잘 된 개들은 아이들처럼 마구 뛰어논다.


한밤중에도 눈이 쌓인 날은 백야처럼 훤하다. 하늘에서 보름달이 비춰주는 밤과는 다르다.

누군가가 아주 높은 곳에서 차별 없이 눈을 뿌려준다. 사람들이 자는 창문턱에도, 아이들이 모두 잠든 텅 빈 놀이터의 그네 위에도, 비탈진 세모 모양의 지붕 위에도, 낮동안 수없이 묻히고 묻힌 사람들의 발자국 위에도 눈은 조용히 내린다. 어제와 같은 풍경 위로 눈이 쌓여간다. 사람들이 깨어나면 눈을 뿌려주던 그 누군가는 잠이 든다.


얼마 전에 내린 눈은 말끔히 사라졌다. 한 폭의 그림은 마음속과 카메라에 흔적을 남겨고 깨끗하게 사라졌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다녔다. 곧 3주 방학이 시작된다. 아이들을 인종차별이 아닌 문화적 차이로 인한 배려로 대해주신 선생님들, 아침 픽업 때 깜짝 선물을 건네주려고 기다리고 있던 친구 그리고 벌써 알고 지낸 지 5~10년이 되어가는 친구들이 있다. 크리스마스 때는 초콜릿과 와인이 좋은 선물이겠지만 몇 번의 반복에 내가 지루해졌다. 바이오 샾에서 산 고급 잼, 천연 오일, 예쁘게 프린팅 된 크리스마스 케이크 접시, 따뜻한 캐시미어 스타킹 그래도 아쉬워서 초콜릿 등을 샀다. 여유롭게 한, 두 개씩 더 사두었다. 내가 생각지 못한 친구들이 연락해와도 당황하지 않고, 그것들을 건네주고 싶다.


가장 소중한 나는 제일 뒤로 밀려났다. 세일 중인 짙은 파란색과 황톳빛 털모자를 사줬다. 그리고 나에게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얼마간의 뭉칫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공원길을 걸어서 오는 양 어깨 위로 선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서 화음을 낸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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