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가는 것들,

by Jane Anne


이곳에 오래 살다 보니, 변해가는 것들이 있다. 유행이 바뀌어서인지, 한국 사람들이 살아서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나의 봄은 언젠가부터 분홍이었다.

사시사철 푸른 침엽수림의 초록을 볼 때마다 심한 봄 앓이를 했다. 우연히 발견한 분홍꽃나무 한 그루를 끝없는 벚꽃길이라 상상했다.

그런데 올해 봄에는 웃긴 해프닝이 일어났다.

어느 날, 아파트에 주차하고 들어서는데 관리인들이 큰 액자를 벽에 걸고 있었다. 벚꽃이 만발한 분홍빛 액자였다.

현지 아저씨로부터 벚꽃 다발도 받았다. 몇 해 전부터 분홍꽃이 피는 조경수를 군데군데 심어놓았다. 웬일인지 만발한 꽃가지들을 베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걸 주워갔다. 공사하는 아저씨들이 그중에 예쁜 가지들을 모아서 챙겨주었다. 한아름 안고 돌아오는 길에 공원의 노부부가 일본말로 "사쿠라"라고 하고, 여기 말로는 "체레슈네 크베티"라고 알려줬다. 한 움큼 떼서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친구 집 대문 앞에 또 한 움큼 내려놓고 왔다.



작년 봄에 알게 된 봄나물들은, 봄마다 먹고 싶은 것들로 하소연하던 나의 불평을 쏙 들어가게 했다. 특히 참나물은 오가는 가로수 길, 공원 옆 길, 도서관 가는 길에 잡초처럼 자라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놀던 딸아이 손에도 들려 있었다. 여러 봄나물은 '이곳이 내 고향산천인가?' 하는 착각까지 하게 한다. 그리고 신기한 건 여기 사람들도 우리가 먹는 그 나물들을 차나 수프 때로는 상처에 붙이는 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 주변에는 내가 만들어준 김밥을 먹고, 직접 해 먹는 현지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부터 마트에서는 밥을 판다. 최근에는 한국식으로 동그랗게 만 김안에 단무지까지 넣어서 파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카페는 오직 뜨거운 커피만 있었다. 아이스커피를 주문하면 아이스크림을 올려주었다. 금세 아이스크림은 녹아버리고, 타는 목은 더욱 텁텁하고 끈적거렸다. 요즘은 노점 카페에서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준다. 서툰 말과 몸짓으로 아이스큐브를 따로 줄 수 있는지 물어봤던 세월이, 에스프레소 커피처럼 진해졌다.

콜택시나 이사업체의 광고판에는 한글이 등장한 지 오래되었다.

얼마 전에 들른 가게에서는 종업원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 주었다. 나도 웃으며 이곳 말로 응수했다.

한 마트에 갔다가 딸아이가 급히 불러서 가 봤더니, 한글이 적힌 스티커 묶음(18개) 4유로대에 팔리고 있었다. 스티커를 참 좋아했던 아들이 어렸을 적에는, 구하기도 어려웠고, 종류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가격도 비쌌다.

최근,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국 마트는 옆의 가게를 인수해 3배 정도 규모를 확장했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현지인들은 라면을 박스째로 사간다. 요즘은 이곳의 학생들이 오며 가며 젤리 한 개, 과자 한 봉지 등 새가 방앗간 들르듯, 쌈짓돈을 쓰고 있다.

친구가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을 보여줬다. 한국 작가가 그린 일러스트 아래 한글이 크게 쓰여있고, 번역된 슬로바키아어가 작게 표시되어 있다. 딸아이가 산 만화책에는 '김밥', '주먹밥', '김치' 등이 맛있는 음식으로, 한글 발음대로 표기되어 있었다.



나는 한 곳에서 이사도 하지 않고 10년 넘게 살고 있다. 이곳 사람들도 이사를 잘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 유치원 때부터 미술, 음악, 운동 등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곳들까지 합치면, 나도 꽤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서인지 요즘 나는 인사를 참 잘 받는다. 내 인상의 어느 부분이 이 사람들을 닮아가서인지 아니면 나도 이제는 터줏대감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에게 주는 인사가 편안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요즘은 헷갈린다.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곳에서, 같은 문화를 공유하며 사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그러다가도 이방인이라 물러서면, 가슴이 툭, 내려앉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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