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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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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Aug 05. 2022

플레이 리스트


3여 년만에 한국으로 갑니다.

우리 아버지는 노래를 참 좋아하십니다.

밭일하실 때도 논일하실 때도 그리고 집에서 쉬시거나 주무실 때도 늘 500곡이 들어간 오디오를 계속 재생해서 들으십니다. 3년 전 여행하실 때도 오가는 차 안에서 내내 그 노래들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외국에 있는 제가 전화하면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연세가 있으셔도 맑고 청아한 멋진 목소리, 가만히 듣고 있으면 눈물이 고이고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아버지의 멋과 흥을 물려받지 못한 저로서는 그 멋진 모습을 이어갈 수 없지만, 그래서 여전히 아버지는 제게 멋진 모습입니다.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아버지만의 아우라, 아버지 당신도 본인이 멋지시다는 걸 아시기에 가끔 자랑도 하십니다. 그 모습이 요즘은 그저 어린아이처럼 천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요즘 플레이리스트들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엄마, 아버지와 여행하면서 그 곡들을 편하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 곡은 "고향무정"입니다.


"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있네.

  ~

  바다에는 배만 떠있고

  어부들 노랫소리 멎은 지 오래일세."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노래입니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 때 십 대 후반의 나이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고향의 아버님과 형님에게 생사조차 알리지 못했습니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부모처럼 모셨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고향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제게 고향은 엄마, 아버지이십니다.

기름진 문전옥답도, 바다의 노랫소리도 아닙니다.

그래서 아직 제겐 '고향 유정'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이제 노래를 불러주시기 어려워하십니다. 목소리는 거칠어지고 갈라지고, 주로 밤에 전화하는 제겐 요즘은 유독 가라앉거나 힘이 빠져 보입니다. 마지막 노래가 작년인가, 올해 봄이었나 봅니다.

멋이 없는 저는 아버지께 제 목소리가 아닌, 제가 정성껏 고른 노래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한국 라디오를 듣다, 좋은 노래가 나오면 제목을 적어 놓습니다. 트로트와 옛날 가요들 그리고 어르신들이 듣기에 무난한, 신나면서도 가사가 들리는 대중가요들을 모아봅니다. 그 플레이리스트는 이번 여름, 어떤 이야기를 담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무심 일상을 살다가, 운전을 하다가 애틋 마음이 올라오더라도 저는, 꾹 참아야 겠지요.

두 번째 곡은 "흙에 살리라"입니다.


"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


제게는 꿈같은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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