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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Sep 15. 2022

알로에 화분


아주 작은 화분에 한 줌의 흙,  화분 밖으로 뻗어 나온 가느다란 줄기는 대충 스치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다. 그 연한 생명을 아이가 학교에서 들고 왔다. 방학 동안 빈 교실에 남아있을 화분들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들려 보냈다. 개학 후,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

우리는 약 한 달 동안 집을 비울 테고, 그렇다면 집에 있는 화분들도 불안한데 "이걸 왜? 들고 왔어?"라는 말에 아이는 대꾸가 없다.
불안해 보이는 가벼운 플라스틱 화분에서 좀 더 안정적인 화분으로 옮겨주고, 한동안 있을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여름 해가 강렬해, 수시로 준 물 때문에 처음에 보여준 여린 초록빛이 금세 축축한 빛으로 바래버렸다. 키울 줄을 몰라 찾아보다 내버려 뒀더니, 어느새 다시 초록빛이다.

한 달 여의 길었지만 너무나 짧았던 여행 후 맞이한 화분들, 그새 쭉정이만 남은 가지들을 뽑아내었다. 최대한 발코니에 붙여놓아, 혹여라도 비가 오면 틈새 물이라도 먹으라고 해 놓았는데, 한바탕 무서운 모래바람이 지나간 듯하다. 내 것이 아닌 이 알로에 화분을 어찌해야 할까? 누렇게 변한 검은 초록을 보다, 다시 물을 주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가을 날씨는 아침에는 잠바로도 추위를 느끼게 하고, 낮에는 반소매 차림에도 땀이 나게 한다. 비가 오다 해가 나다, 계절 또한 바빠 보이는 요즘, 잠깐 보여주는 파란 하늘의 빨간 사과는 더없이 예뻐 보인다.

여행 후, 느린 나는 일주일이 넘어가도록 집안 정리를 못 끝내고 있다. 가끔 짬을 내, 발코니를 들여다보니 화분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죽어버린 줄 알았던 알로에는 다시 엷은 초록색으로 생기를 띤다. 누른색이 초록빛으로 서서히 번져나간다. 그새 옆으로 작은 새싹들이 삐죽 솟아나 있다. 알로에를 처음 키워보는 나는, 이 아이가 너무 신기하다. 작은 뿌리에서 솟아나 옆으로 뻗어있는 가지들,  어떻게 그새 작은 새끼들을 또 키워냈는지, 죽은 줄 알았는데 돌아보면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 싱그러움을 보여주는 강한 생명력, 아무래도 나는 아이손에 이 알로에를 돌려보내지 못할 것 같다.
화분을 맡긴 전 학년도 선생님이 이번 학기부터 교장선생님이 되셨다. 내가 다른 화분을 보내더라도 새로 오신 선생님은 전혀 모르실 다. 나는 작은 알로에를 곁에 두고, 오랫동안 자라나는 걸 보고 싶다. 내가 잘못 키워 푸르죽죽하게 만들어  놓으면,  다시 말갛게 살아내는 이 알로에가 너무 싱싱하고 예뻐서 꼭 나와 노닐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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