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어느 여행지에서 아이와 여행 온 엄마를 봤다. 나도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지 오래 걸렸을 뿐, 지금이라도 괜찮다.
당일 자정이 지나고, 인터넷 카드결제를 한다. 89.9유로, 드디어 아침이 되면 떠난다.
그런데, 몇 분 뒤 이 경로를 이용할 수 없다는 창이 뜬다. 머리가 하얘지고, 이게 뭐지? 떨리는 마음으로 겨우 이메일 하나를 접수해놓고, 일단은 자야 했다.
각자의 배낭에 잠옷 한벌, 세면도구, 생수, 핸드폰 등의 짐을 간단히 챙겨, 우리만의 여행을 떠난다. 머릿속으로는 복잡한 채로...
슬로박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창구 직원이 직접 대합실로 나와 영어가 되는 직원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준다. 그러나 확인할 방법이 없다. 1분을 남겨놓은 채, 일단 기차를 타라 한다. 밖으로 나와 떠나려는 기차를 겨우 올라탄다.
승무원이 온다. 번역해 놓은 글과 카드결제 내역 그리고 이용 불가하다는 메시지들을 주절주절 꺼내놓고 버벅대지만, 오는 말들은 눈치로 알아듣는다. 잠시 뒤, 우리만 앉을 수 있는 객차 룸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오랫동안 있다 갔다. 너희는 세 명인데, 표가 있어야 한다고.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 수도)에 거의 도착할 즈음, 다시 찾아온 승무원에게 새로 결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잠시 뒤 그분은 그냥 내리라고 한다. 그리고 비엔나까지는 꼭 티켓을 끊으라고 한다.
처음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나의 여행에서, 그분의 순수함이 나의 서툰 출발을 응원해 주신 것 같다.'고맙습니다!'
비엔나 중앙역에 도착했다.
날 힘들게 했던, 오스트리아 회사 티켓 창구에 가서 확인해보니, 며칠 있다 자동으로 환불이 될 거라 했다. 잘 해결되겠지? 믿고 기다려봐야겠다.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역에서 지체하고, 길을 헤매느라 2시간 만에 <자연사 박물관>에 도착했다. 우리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이곳은 아들이 2,3살 때 연회원을 끊어놓고 왕복 6시간을 오가던 곳이었다. 아들은 엄마, 아빠 품에 꼭 안겨서 무섭고도 사랑했던, 움직이는 티라노 사우루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모든 동물에게 뽀뽀를 하면서 돌아다녔다.
자연사 박물관
29500년 전, 구석기시대의 걸작품이라 칭송받는 조각품이 여기에 있다. 1908년에 발굴된, 얼굴은 없고, 팔다리는 짧고, 가슴과 배가 발달한 아름다운 비너스상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자연사 박물관
아름답고, 오래된 대리석 건물의 맞은편에 똑같이 생긴 건물이 하나 더 있다. 그곳은 미술사 박물관이다. 자연사와 미술사 박물관, 그 사이의 광장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있다.
크리스마스 장식, 빵, 치즈, 장난감, 천연 방향제 등 파는 물건과 상인들 그리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래도 제일 인기 있는 건 역시 먹는장사다. 요기를 할 수 있는 곳과 글뤼바인(펀치)을 파는 곳에는 줄이 길다. 올해의 글뤼바인 컵은 빨간색이다. 내가 사는 곳은 올해 3유로가 넘던데, 이곳은 5유로가 넘는다. 예년에 비해 배 이상 비싸졌다. 나에게는 맛이 별로라 슬쩍 지나쳐 간다.
두둑이 용돈을 챙겨 온 아이들은 살 게 없다고 불평이다. 3년 만에 찾은 크리스마스 마켓의 장난감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더 이상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 2022
둘째 날이 밝았다.
잠에 푹 빠졌던 아이들이 깨어났다.
다시 길을 나선다.
하늘로 솟아있는, 신이 빚은 것 같은 건축물이 보인다. 약 900년 전에 지어진, <슈테판 성당> 안으로 들어선다. 아기띠에 매달려 마구 울던 딸아이를 성당에 들어가서 달래주니, 평안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오래된 성당의 아름다움은 나의 내면에도 잠시 깃든다. 우리의 기도가 담긴 세 개의 초가, 아주 밝게 타오른다.
슈테판 성당
클림트의 '키스'가 보고 싶었다. 그들 아래로 펼쳐져 있던 꽃밭이 너무 아름다웠다. 몇 번을 고민하다, 이번에는 가 본 적 없는 < 알베르티나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곳엔 피카소, 고갱, 드가, 세잔, 르누아르, 마그리트, 모네, 미로가 있었다.
피카소
마그리트, The Enchanted Domain 1953
뒤러의 토끼 그림은 작지만, 사실적이고 세밀한 털 하나하나의 묘사가 김홍도의 호랑이 그림과 오버랩된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털 하나하나를 정성껏 그려야 할 때는 마음의 수양 또한 상당한 경지 여야 완성할 수 있다고 들었다.
뒤러, 갈색 토끼
그라피티 아티스트, 장 미셸 바스키아의 전시관이 있다. 친분이 있던 앤디 워홀의 사망 후, 27세의 젊은 나이에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 그의 낙서 같지만 천진하고 밝은 색감이,인종차별과 힘든 삶 속에서 자신을 위한 동시에 세상을 위한 예술로 재탄생했다.
장 미셸 바스키아
그리고, 내가 잊고 있었던, 좋아했던 샤갈이 있었다.
생일
"당신은 몇 살이죠? 생일이 언제인가요?"
"정말 그걸 알고 싶소? 나도 가끔 그게 궁금해. 어머니 말고 누가 그걸 알겠소! 어머니는 아이를 많이 낳아서 당연히 그걸 잊으셨지."
...
나는 숄과 스카프를 있는 대로 다 꺼내고 침대 커버까지 벗겨 들고 부엌으로 가서 팬케이크와 튀긴 생선 조각 등 당신이 좋아하는 걸 몽땅 쌌다.
" 저 바보 계집애가 저렇게 짐을 잔뜩 들고서 어딜 가는 걸까?", " 남자 친구에게 가려고 집을 빠져나온 게 아닐까? 도대체 요즘 애들은 왜 그럴까."
...
"알아맞혀봐요, 오늘이 무슨 날인지."
"나에게 그렇게 어려운 질문을 하다니. 나는 날짜 같은 건 전혀 모르지 않소."
"아이참, 오늘은 당신 생일이에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았소?"
...
당신은 캔버스 위로 몸을 숙였다.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
나는 여전히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당신은 몸을 길게 늘이고, 고개를 뒤로 젖혔고, 내 고개도 뒤로 젖혀주었다. 당신은 내 귀에 살짝 키스하면서 속삭였다.
...
"그림이 마음에 드오?"
"아! 정말 아름다워요. 당신이 이렇게 날아다니는 모습은 정말 멋져요......, 이 작품 제목을 <생일>이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