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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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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Oct 15. 2022

지금은,  가을


시월이다.

가을 안개가 피어난다.

커튼을 젖히면, 아침 거리가 희뿌옇다.

모처럼 밝고 따사로운 해를 기대해본다.


구월은 내내 비가 내렸다.

흐리다가 비가 오고, 비가 오다가 흐렸다.

이럴 땐 예쁜 옷들은 무용하다.

어른 장화를 사고 싶은데,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운동화와 청바지 그리고 모자 달린 워터프루프 잠바를 늘 가까이 두었다.


친구가 박스를 건네줬다.

그 안에는 초록사과, 빨간 사과, 서양배와 서양자두 그리고 토마토가 있다. 생파슬리와 말린 페퍼민트 잎 그리고 야생 아로니아 잼도 있다.

가을이 오면 집마다 사과가 익어간다.

골든 딜리셔스, 그래니 스미스 등 초록사과도 있고, 에블리나, 핑크레이디, 요나 골드, 후지, 갈라 등의 빨간 사과도 있다. 마트에 가면 10여 종이 넘는 사과들이 즐비해 있다.


요즘은 망고가 맛있다. 밤은 품질에 비해 비싸다. 그리고 조금씩 보이는 단감들을 사서 먹을 때이다.

무화과는 튀르기예, 밤은 프랑스, 단감은 스페인,

단무지처럼 생긴 기다란 무는 독일, 포멜로는 중국 등 과일과 채소는 다양한 나라에서 들어온다.

언젠가 한 할머니가 단감을 담고 있는 내게 물으셨다. 이 과일이 맛있냐며, 외국 과일인 단감을 할머니는 한 번도 잡숴본 적이 없으셨나 보다.

과일과 채소들은 대부분 직접 골라서 담을 수 있다. 바나나도 송이에서 몇 개만 떼고, 포도송이도 너무 크면 조금 잘라내고, 생강도 중간에 부러뜨려서 필요한 만큼 살 수 있다.

야채 코너에서는 큰 쓰레기통이 옆에 있다. 사람들은 당근, 무, 콜라비, 빨간 무 등에 달린 초록잎을 손으로 꺾어서 버리고 간다. 그 잎들을 데치거나 말리면 얼마나 맛있어지는지, 여기 사람들은 모른다. 가을 햇을 받은  영양가 듬뿍 담기는데... 요즘도 그 버려진 초록잎들을 향해서 손을 뻗다가, 겨우 마지막 예를 지키며 조용히 물러서 간다.



안개가 피어난다.

가을이 파란 하늘에 있는지,

알록달록한 단풍잎에 물들어 있는지,

아니면 통째로 연못에 거꾸로 들어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언덕 위에는 연들이  날아닌다.

그날, 나는  유러피언처럼 햇볕을 먹고 또 먹었다.



시월의 말에는 아이들 방학이 짧게 있다.

11월 1일은 All Saint' Day 또는 All Hallows' Day이다. 이날은 공휴일이다. 교회 예배와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그리고 묘지를 방문한다. 기독교가 거의 국교였던 오래전, 죽은 자들을 기리는 날로 제정되었다. 그리고 고대 켈트족은 11월 1일이 새해였다. 새해 전날 10월 31일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흐려진다 생각했다. 이 날이 현대에 오면서 핼러윈 축제로 발전되었다.

마트에서는 다양한 초와 등 그리고 조화들이 나와 있다. 우리나라처럼 따로 제사음식은 없지만, 이 날은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다.

묘지 앞에 새로 장식한 꽃들을 놓아주고, 등을 밝힌다. 어스름 밤이 되고, 묘지마다 촛불이 밝혀진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 발자 소리와 소곤소곤 나누는 대화 소리는 어느 세상에 속한 사람들인지, 자아내는  분위기는 고요하고 온화하면서도 숭엄하다.


( 어느 작은 마을의 공동묘지 )


서머타임은  시월 말에 해제된다. 그날 아침에는 일어나 당황하지 않고, 벽시계와 전자시계를 한 시간씩 당겨놓아야 한다.

아이들 가방, 잠바 등에는 기본적으로 야광띠가 들어가 있고, 어른들도 안전을 위해 핸드백이나 가방에 걸고 다닌다. 가을은 점점 어두워지고, 거리에는 상가도 없고, 가로등 어둡다.

그 어둠을 타고  스산스러운 낙엽 냄새가 연한 불냄새처럼 마음을 태운다.


체코의 산골마을을 산책하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흐린 날씨에 연기가 피어오른다. 흐린 가을날에는 글로써 풍경을 반추한다. 마음에는 깊이 박혀도, 사진으로는 으스러지고 만다. 저 중에 한 집을 골라 잠시 쉬어가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따뜻한 온돌방에서 윤기 흐르는 돌솥밥과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다. 기껏해야 피자와 파스타를 배 속에 넣고 돌아가는 길, 마음에 허기가 진다.



하지만, 지금은 가을이다.

그리고 시월의 어느 날이다.

지금은  시월의 어느 멋진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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