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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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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Nov 06. 2021

늦은 가을,


최저기온이 마이너스 1,2도로 내려갔다.

큰 아이에게는 겨울잠바를 꺼내 주고, 작은 아이에게는 친구가 물려준 간절기용 잠바를 입혔다. 아침 등굣길에 아이들에게 "서리가 내렸다" 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딸에게는 서리 맞은 풀을 만져보라고도 했다. 소했던 단어가 느낌으로 기억된다.


픽업하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잠바 속으로 목과 손을 집어넣고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의 넓은 초원이 온통 하얗다.

동그란 까만 꽃씨에 맺힌 서리가 꼭 설탕가루를 묻힌 사탕 같다. 알알이 박힌 서리가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다 나도 만져보았다. 까칠까칠, 차가운 느낌에 마음이 오히려 즐거워진다.



얼마 전까지도 단풍은 나무의 위에만 물들어 있었다. 지금은 빈 나뭇가지로 남아있고, 아래쪽으로만 단풍잎들이 매달려있다.


놀이터 부근으로 가자 바람도 없는데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처럼.

가을 초반,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생가지가 꺾이기도 하고, 덜 익은 도토리와 마로니에 열매가 후드득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바람이 없다. 나뭇잎들은 혼자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나무에게 오히려 기쁨이다. 제가 떨어질 때를 기다리다 스스로 줄기를 떼 버리고, 아주 가벼이 그리고 우아하게 마지막 춤을 추며 내려오고 있었다.  잠시 서걱 소리를 내며 이미 떨어져 내린 나뭇잎 품속으로 섞여갔다. 자신이 머물렀던 그 나무 아래로 수북이 쌓여간다. 단풍으로 나무의 땅도 물들어 간다.


스무 살 때쯤, 떨어지는 나뭇잎이 나에게 닿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설레던 기억이 난다. 단풍길을 거닐며 나뭇잎 눈을 맞고 있는 나는 어떤 것들이 이루어질는지 궁금해진다.



시에서 관리하는 제초하는 인부들은 가을에도 여기저기서 일을 하고 있다. 공원도 도로 옆에도 가로수길에도 잘 자라나는 풀들을 베고 있다.


하얀 서리가 내린 땅 위로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져 내린다. 가을이 내려온다. 모두 다 땅으로 내려온다.  올봄에 알게 된 참나물이 거리 곳곳에서 파릇파릇 돋아나고, 몇 년 전에 캐다놓은 달래도 베란다 화분에서 새로 자라나고, 도로 옆의 유채밭도 노랗게 꽃들이 피어난다.



햇살이 부서지고 부서져 해가 넘어가도 부서진 햇살은 공기 중에 머물러 있다.

서머타임이 해제되었다. 저녁 6시는 얼마 전의 저녁 5시였다. 래도 부쩍 어두워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11월 중으로 모두 윈터 타이어로 교체해야 한다.

지금은 마지막 남은 희뿌연 늦은 오후를 즐기지만, 그 햇살마저도 모두 수거해가면 이제 곧 어둠은 가속화되고, 가을은 땅 속으로 깊이 잠겨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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