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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Jan 04. 2023

꿈같은 시간


예정에 없던 한국여행을 가게 되었다.
겨울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약 9년 만이다.
한국의 겨울을 내가 기억하고 있을까?
흔히들, 동유럽이 춥다고 생각하나, 한국에는 체감온도를 낮추는 칼바람이 있다.
털모자와 복슬복슬한 목도리를 챙겨, 처음으로 나 홀로 한국여행을 떠난다.
남편과 아이들은 공항 입구에 나를 내려두고는 쌩하니 가버린다.
이제는 긴장도 되지 않는다. 미리 수속을 밟고는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괜한 로맨스를 꿈꿔보았다. 외국 사람이었으면 잠깐 눈을 마주치며 "Hello" 라도 했을 텐데, 11시간의 비행동안 오직 식사메뉴를 주문하는 두 번의 목소리만 스쳐 지나간다. 싱거워서 혼자 웃는다.

언니는 나를 싣고는 을왕리해수욕장으로 바로 새 버린다. 도착 후, 지방으로 이동하던 버스 안에서는 늘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던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8시간의 시차마저도 훌쩍 건너뛸 만큼, 나는 홀가분한 것 같다.

고향에는 아흔이 넘은 아버지와 아흔의  앞에서 다시 젊어지는 엄마가 계신다. 나지막한 산야에는 따스한 해풍이 감싸고돌고, 지는 해는 한참을 머물다 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버지는 조금 순해지고, 엄마는 여전히 엄마이면서 짤막한 지혜를 들려주신다. 가족의 마음을 헤집고 다니던 오빠는 어느새 철학자가 되어 있었다.
오빠가 만든 길을 걸어보았다. 가시가 있는 아카시나무는 베어져 있고, 소나무 둥치는 중간중간 쉼을 주었다. 그 길 위에 서니, 빨강, 파랑의 해안가 마을이 내 두 눈에 쏙 들어온다. 보드라운 새 길 위에는 밤송이와 낙엽들이, 겨울에 찾아온 내게 지난가을의 흔적을 내어 보여준다.
어릴 적부터 바다는 있었고, 어릴 적부터 바다옆에 산은 있었다. 서낭당 옆의 가파른 산은 올라가는 길을 몰랐고, 전복양식으로 그 바다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40년을 훌쩍 넘기고서야 오빠가 만든 길을 따라 처음으로 그 산과 바다를 함께 볼 수 있었다. 산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인적이 끊겨,  너무나 푸르고, 파도가 가득 차서, 산이 바다이고, 바다가 산이었다.

그리고 서울(Seoul)이다.
내 인생의 삼분의 일을 살았던 도시이다.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길, 서울의 불빛이 보인다. 화려하고 빼곡한 서울의 불빛, 그 어느 유럽의 강보다도 넓고 출렁거리는 검푸른 한강, 그 옆으로 퇴근길 강변북로의 자동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흔한 서울의 풍경이 내게는 너무나 즐겁고, 신나서 가슴이 떨린다.
약 십 년을 근무했던 회사 근처에 가서 거리의 풍경을 되짚어 본다. 주저하다 처음 맛을 보고는 좋아하게 된, 순댓국집에 들러 변함없는 맛을 음미한다. 시간의 흐름이 빠른 이 서울에서도 많은 것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다.
왕복 14차로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 마저도 활기가 찬다. 그 많은 차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이렇게 모여있는 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새벽이 되어도 많은 식당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많은 가게는 시간을 잊은 채 그곳에 있었다.

I see me.
나는 나를 봐옵니다.
나는 나의 고향과 서울을 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어릴 적과 십 대의 모습을,
고뇌하던 이십 대와 삼십 대를 보낸 서울의 모습을,
세월이 훌쩍 지나,
오직 좋았던 모습만 간직한 채로,
나는 나를 새로이 봐옵니다.

작은 국토에 모든 자연을 품고, 사람들은 활기를 띠며, 알싸한 매력을 지닌 곳. 갖가지 풍부한 식재료들 미각을 즐겁게 해 주는 곳. 오가는 정()이 있고, 이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태양은,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르게 저녁 5시 반까지도 따스하게 비춰주는 곳.

내 부모와 형제들이 사는 나라.

약 8일간의 꿈같은 연말을 한국에서 보냈다.
나는 여전히 나지만,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한 나로 다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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