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가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Anne Nov 15. 2023

불 지피기



가을날, 그것도 숲 속에서 불을 지피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주변에는 마른 나뭇가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땅 위로는 말라가는 낙엽들이 뒹굴고 있다. 나는 그저 잠시동안만 이것들을 주워와 성냥불을 그으면 된다.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마른 잔가지들이 아주 중요하다. 성냥을 그어 수초 간 갖다 대고 있으면 바짝 마른 부스러기 꿈틀댄다. 그 위에 나무젓가락만 한 잔가지들을 올려놓으면 '타다닥'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작은 불길이 피어오른다.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 그 과정을 세심하게 반복하며 지켜보다가, 내 팔뚝만 한 나뭇가지나 다리통만 한 가지들을 옆으로 슬쩍 걸쳐 놓는다. 그러면 불길은 자기네들끼리 점점 커져서 솟아오른다.




잭 런던의 <불 지피기>란 단편소설이 있다. 영하 100도의 기온 속에 한 사나이가 홀로 길을 나선다. 노출된 코와 볼은 얼어가고, 수염에는 얼음덩어리들이 길게 늘어선다. 첫 번째 불지피기에 성공하고,  다시 길을 나서다가 발이 젖게 된다. 불을 지펴 발을 말려야만 했지만, 장갑을 벗은 손은 금방 마비다. 눈(目)을 이용해야만 두 손이 팔 끝에 달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이 나쁘게도 나무아래 불을 피웠다가 나무 위의 눈이 녹아내려, 불이 꺼져버리게 된다. 연이어 성냥들 눈 위에 치고 입으로 물 힘겹게 그어보지만, 유황 타는 연기에 발작적으로 기침을  한다.  결국 사나이는  불 지피기에 실패하고, 깊은 잠에 빠져고 만다.

일단 불을 지피자! 낙엽과 잔가지들을 모으고, 마트 전단지를 한 뭉치 꺼낸다. 불을 피울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성냥알을 하나 집어 긋는다. 그런데 '피시식' 성냥불이 종이에 옮겨 붙지 않고 꺼져버린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건 종이잖아!'. 새로 성냥알을 집어 다시 긋는다. 그런데 이번에도 불은 바로 꺼지고 만다. 종이를 더 작게 찢어놓고, 아주 잔가지들을 고르고 골라 올려놓는다. 조금씩 불이 타들어간다. 종이에 옮겨 붙고, 잔가지들도 빨갛게 물들어간다. '그래, 그렇지!', 그런데 불은 그러다가 꺼져버리고 만다.




지금은 영하 100도의 기온도 아니고, 기껏 해봐야 영상 10도 아래일 뿐인데... 아무래도 이곳을 택한 것이 잘못됐나 보다. 숲을 등지고 있어 이 시각에도 그늘이 져 있다. 하지만 가을날씨도 한 몫하고 있었다. 가방에서 꺼낸 신문지는 금방 눅눅해져 버렸고, 바짝 마른 듯한 잔가지들도 사실은 축축해서 맥을 못 추고 있었다. 땅에 낮게 깔린 낙엽들은 아래에 이슬을 가득 숨겨놓았다.  희멀건 가을 안갯속에 갇힌 대기는 불기운을 모두 빨아들이고 있었다. 새삼 한기가 스며든다.



친구에게 변명면서도, 불을 피우고 싶은 욕망은 더욱더 강해진다. 불을 피우고 싶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고 싶다.
아침해가 비추는 곳으로 가, 이슬이 걷힌 나뭇가지와 낙엽들을 하나하나 들춰보며 새로 모아 온다. 그리고 '불 지피기'에 아주 집중한다. 마침내 작은 불길들이 이어서 붙고, 또 이어 붙어 점점 더 크게 솟아오른다. 머리카락과 얼굴에는 재가 들러붙고, 몸에서는 불냄새가 난다. 어느새 40여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미리 따라놓은 커피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러나 '불 지피기'의 성공으로 나무냄새가 배어든 소시지와 바삭하면서도 촉촉한 바게트를 맛볼 수 있었다. 가을이 꾹꾹 눌러져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지피기'의 순수한 즐거움에 먼저 취해 있었다.

새삼,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앉아,  호들갑 떨지 않고 자연스레 불을 지필 수 있었던 건, '마르타' 덕분이라는 생각이 다. 그녀가 이런 경험을 여러 번 시켜줬었다. 어떤 말이라도 하고 싶다. 내 마음속 말이 언젠가는 가 닿을 거로 생각하며 읊조려본다. "고마워요!".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라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