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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Dec 18. 2021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상사

얼마 , 업무를 하다가  실수를 했다. 내가 실수함으로써  사수가 함께 협업하는 파트너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던, 그런 실수였다. 스스로도 제일 싫어하는 실수다. 내가 죄송하고 끝낼 일이 아니라,  사수가  누군가에게 죄송해야하는 그런 상황. 진짜 너무 싫다.

사실 내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너무 당당하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확인한 메시지라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되돌릴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낙심하고, 스스로 생각해도 최근 나의 잔실수가 잦은 느낌이라 '죄송하다'라는 말을 하기에도 '죄송하다' 앞으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사과의 말을 남겼다. 그러고도 한참을 '내일 사수 얼굴을 어떻게 보지?',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까'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잠을 들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길을 나섰다.


그런데 출근길에 내가 남긴 메시지에 사수의 답변이 왔다. '애기를 잠재우느라 답을 못했다는 말과 함께, 잘못을 탓하기보다 앞으로 서로 잘 확인하고 잘해나가자라는 이야기'였다. 괜히 어젯밤 자책을 하고 오늘 아침 출근길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왔던 내가 너무 머쓱해질 만큼 내 상사는 더 멋진 사람이었고, 실수에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실수에 너그럽다는 말이 모든 것을 봐주고 용인한다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실수를 한 직원을 무조건 탓하고 비난하기보다 함께 하는 일이기에 더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자는 마인드를 가진, 함께 잘해나가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조금은 감동을 받고 고마운 마음으로 회사로 향하던 중, 회사 바로 밑 카페에서 만난 상사는 정말 아무 일 없던 듯이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걸어오는 게 아닌가. 지난밤, 이전에 겪어왔던 상사처럼 "수인씨 이리 좀 와보세요. 어쩌고 저쩌고"하면 "죄송합니다"하면서 끝나는 그런 장면을 상상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싶었다.

자꾸 이전에 만난 사수가 나에게 했던 반응들을 떠올리며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내가 참 많이 작아졌다. 그래 이 사람은 그때 그 사람이 아니라, 훨씬 더 그릇이 큰 사람이고 배울게 많고,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은 그런 동갑내기 사수이고, 사실 그런 모습들을 이전부터 보여줘왔는데도 사수를 신뢰하는 마음이 자꾸 다른 사람에 대한 경험때문에 상쇄?되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진짜 이 회사를 나갈 때 꼭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을 못하고 착한 사람보다, 일을 잘하고 못된 사람이 차라리 낫다는 말에 크게 동감하던 시간을 지나, 그래서 일을 못한다는 소리는 죽어도 듣기 싫어서 나의 실수에 관대하지 하지 못한 나에게 지금 이 상사는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복하지 않도록 잘해나가자. 그럴 수 있다'라는 말로 계속해서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일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잘 갖춘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든다.

이전 같았다면 비는 시간이 생기면 농땡이도 부리고, 어떻게 하면 쉴 수 있을까를 생각했는데 지금은 먼저 일을 찾아 나서거나, 먼저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건 정말 내가 이곳에서 만난 사수의 힘이 크다고 생각했다.

올해 12월까지 함께 일하기로 했었는데 내년 3월까지 함께 하기로 계약서를 다시 작성했다. 4개월은 조금 애매하다는 생각이었고, 조금 더 일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일을 대하는 태도와 마인드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그렇게 태도와 자세가 준비가 되면 일에 대한 센스도 생길뿐만 아니라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건 시간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꽤나 수동적이고, 꽤나 이기적인 나는 '함께 가자'라고 말하는 이 회사의 메시지에 점점 더 동화되고 있는 것 같다. 혼자이면서도 함께인 이곳에서 '함께 일하는 법'을, 그리고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마음을 배워가는 중이다.

4개월 뒤에 내가 지금 보다는 조금 더 나은 조직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그리고 '잘' 해야겠다. 고마운 사수 덕에, 애사심이라는 것이 생기려고 한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결국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또다시 이렇게 확인한다. 고맙습니다. 나의 동갑내기 사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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