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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May 02. 2022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

최근 이어령 님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남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발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터의 문장들'이라는 인터뷰 책을 쓰신 김지수 기자님이 이어령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내용을 담아낸 책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가며 직접 겪으며 깨달은 인생의 정수와 지혜가 담겨있다는 리뷰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 인터뷰에 대해 관심이 있는터라 대화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다소 내용이 심오하고 어려워 보이는 목차를 뒤로 하고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장을 열었다.


'내 것인 줄 알았으니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라는 글귀가 써여 있는 페이지로 시작해서 한 장 한 장 넘겼다. 대체로 기자님의 질문에 대한 이어령 선생님의 답은 딱 떨어지는 정답보다는 비유를 통한 설명이 많았고, 대부분 철학적인 내용들이라 스스로 생각하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야 했다. 그러다 마주한 질문이 바로,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 앞에서 망치로 한대 '콩'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자기다움, 나다움'   단어가 요즘  인생의 '화두'이다. 취업을 준비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지금, 계속해서 '내가 원하는 ,   있는 , 하고 싶은 ' 무엇인지 묻고 시도해보면서, 누군가가 쥐어주는 정답을 따라가지 않고, 단순히 돈을 버는 무리에 속하려고 무작정 뛰어드지 말고, 정작 내가 원하는 발걸음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물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행과 추진력이 약한 나를 계속해서 다그치며 무엇인가를 하도록 하느라 애를 쓰는 중이었다. 그래서 오늘 드디어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던 사진집을 인디자인으로 제작하여 인쇄소로 넘겼다.

살아가다 보면 혼자 '뚝'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않을 때가 가장 동떨어져있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마음 편히 쉬어감을 용납하지 않는 나에게 '백수'의 시절은 불안과 조급함으로 내가 아닌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조금은 선명해진 지금은 스스로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하고, 어떤 포트폴리오를 쌓아가야 할지 알게 되어서 차근차근 시도하는 중이고, 무작정 아무 데나 입사를 원서를 넣고 있지는 않다.


다만 원하는 하는 일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다림의 시간'에 불안과 조급을 잘 다스리며 내 바깥의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하루의 루틴이 없고, 중심이 흔들리는 순간 하루는 그저 유튜브와 티빙, 웨이브와 인스타를 돌려보며 그냥 흘러간다. 요즘도 이런 나 자신과 매일 싸우는 중이다.


이런저런 나와의 연약함과 씨름이 계속되던 중 마주한 이 질문을 곱씹어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온전한 나로 존재했던 시간보다 내가 아닌 모습으로 어딘가에 맞춰가려 했던 시간이 참 길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게 불편함에도 꾸역꾸역 했던 이유는 아마도 일단 돈을 버는 게 목적이었고, 내가 나를 잘 몰라서였기도 하고, 스스로가 노력을 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하대도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 반복되는 실패의 경험을 쌓게 되면 잘 해내지 못하는 나, 세상의 평균의 기준에 못 미치는 것 같은 나 자신이 정말 싫을 때도 있었다. 안 맞았던 것일 수도 있는데 '잘하지 못하는 나'를 채찍질하면서 '왜 이것도 못해?' 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날들. 그런 날들이 반복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남과의 비교'였다. 비교의 늪에 빠지면 끝도 없는 자기 비하와 평가로 하루를 보내게 된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될까, 왜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살지 못할까,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일까?' 하는 스스로를 향한 비난이 내 머릿속을 맴돌고 그렇게 스스로를 갉아먹게 된다. 그렇게 무기력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요즘도 가끔, 아니 매일 아침에 '벌떡'눈을 뜬다. 감사와 기쁨, 희망과 기대를 품고 시작하기보다 '불안과 조급함,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압박과 강박'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그런데 그런 씨름하는 날들을 하루하루 보내다, 마주한 '너대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냐?'라는 질문 앞에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사람마다 다 때가 있고 시기가 있고, 꿈틀거리는 시기가 있다고. 그러니 남들의 속도와 발자취를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조급함과 불안은 선택에 있어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그리고 오늘의 내 모습이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아가고 성장하려고 발버둥 치고, 두려움을 너머 무엇인가를 하기로 선택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대신 지금의 모습을 올바르게 직면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한 나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다만 조금 느린 것일 뿐이라고.

나로 존재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이 혼자만의 고독의 시간을 잘 지나고 싶다. '나만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이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서른둘,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절대 늦지 않은 시간. 내 평생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업을 찾기까지 누군가는 빨리 선택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뒤늦게 방향을 틀기도 하고, 누군가는 뒤늦게 발견해 자기의 길을 갈고닦고 나가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다양한 것,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면서 나의 색채를 찾아가야지.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사람이고, 그것만으로도 특별하니까. 무리에 속하려 하지 말고 나만의 길을 가자! 존재하자, 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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