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 May 12. 2022

있는 모습 그대로 머무를 있는 친구와 함께한 날

고향에 내려와 올 때마다 만나는 동네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났으니 어느덧 14년 지기이다. 퇴근 후 집 앞에 들려 나를 태우고서, 원래 가기로 했던 치킨집을 뒤로하고 '비 오는 날은 삼겹살이지!' 하며 고깃집으로 향했다. 가성비도 좋고, 맛도 좋다기에 따라갔다. 친구의 말은 일단 신뢰하는 편이고, 먹는 것에 대해 관대한 편이기도 하지만, 친구를 만나는 게 목적이었기에 사실 뭘 먹어도 상관이 없었다. 


고기를 앞에 두고 사수와 있었던,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황당한 썰을 풀어내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내가 회사 생활하던 때에 함께 했던 최악의 사수가 떠올랐다. 생각만 하면 내 안에 없던 분노도 생기게 했던 존재였는데 일찍 떠나지 않았던 게 후회될 만큼 좋지 않은 기억들만 가득한 관계였다. 어쨌든 그렇게 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정말 사회생활은 쉽지 않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어느새 이런 대화를(?) 나눌 만큼의 어른이 되어버린 게 실감이 나기도 했다. 


직장인의 필수코스처럼, 서로의 푸념을 늘어놓고서 일어나 (앞에 술잔만 없었지 미생들의 대화를 나눈 후) 이동하기 전, 계산대 앞에서 '오늘 닌 돈 쓰지 마라!'하고 외치던 멋진 나의 친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일을 할 때이든, 하지 않을 때이든 늘 만나게 되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인데 내려왔으니까 사고, 백수니까 사고, 이래서 사고 저래서 사고. 그 마음이 언제나 고맙다. ('고맙고, 미안하다'가 나의 십팔번이었는데 이제는 미안해하지는 않기로 했다. 다음에는 내가 친구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면 되니까. 잊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니까.)


 그렇게 1차를 마무리하고 집 근 차에 바다를 갔다. 30분이면 가는 바다라 갈 수도 있는 거겠지만 일하고 와서 본인도 피곤할 텐데 바다를 좋아하는 나를,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나를 너무나 잘 알고서 별거 아닌 듯 데려가 주는 친구의 마음 씀씀이도 참 고마웠다. 고마운 게 참 많네. 도착한 후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최근에 작년에 두 달 동안 머무르며 찍은 사진으로 만든 첫 독립출판 사진집을 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 함 여행 메이트 이기도 하고, 제주에 있을 때 함께 여행을 했던 기록도 담겨서 꼭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제주에서 출장을 보낸 한 달간의 시간이 이 사진집으로 또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거다. 좋아해 주는 친구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뿌듯했다. 함께한 시간을 서로 추억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또다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바다 근처의 카페라 벌레들이 많았는데, 그 벌레들의 공격만 아니었다면 계속되었을 것이다. 카페로 옮긴 후의 대화는 연애와 결혼, 누군가를 만나는 이야기를 주를 이루었는데 언젠가의 가까운 미래에 서로의 평생 친구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별 것 아닌 시간 같지만 이런 시간이 나에게는 크나큰 힐링이 된다. 그리고 친구들마다 함께할 때 느껴지는 다른 바이브(?)가 있는데, 이 친구는 이상하게 나에게 차분함과 안정감을 주는 친구다. 함께 있을 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저런 말은 해도 되나'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뇌를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친구 중 한 명이다. 함께 있을 때 그냥 내가 나일 수 있는 친구. 정말 다른 구석이 많다고 느끼면서도 통하는 게 많아 만날 때마다 즐거운 우리. 그래서 14년이라는 시간을 이어올 수 있고, 여행도 함께 할 수 있었겠지.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친구들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변하는 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오랜 친구들은. 최소한 10년이 넘은 관계들은 마치 견고한 성처럼 그대로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언젠가 사는 곳이 달라지고, 어떠한 이유 때문에 잠시 멀어지더라도 쌓아둔 추억들이 있기에 언제고 다시 만나 반갑게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일상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내 주변 친구들 덕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인생은 혼자다!'라고 하면서도, '함께이면 더 좋고'가 늘 따라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향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먹고, 왠지 모르게 푸근하고 기분 좋았던 어제를 회고하며 글을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블루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