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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May 18. 2022

많은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할 나의 것들


최근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들과 함께 모였다. 18살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니 어느새 14년 지기. 서로의 성장과정의 절반을 본 거고 서로의 20대와 30대를 함께하고 있으니 정말 소중한 인연이기도 하다. 


친구의 브라이덜 샤워를 위해 모인 우리를 위해 신부가 될 친구가 호텔을 잡아주었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 서울에서 퇴근 후 부랴부랴 부산으로 내려온 친구와 함께 만나 간식들을 사서 호텔방에서 모였다. 여행도 종종 갔던 친구들이라 서로의 민낯을 보는 것, 잠옷 차림의 추리한 모습을 보는 것, 서로 잠을 자는 시간까지 다 다른 서로가 익숙했다. 무엇보다 bgm으로 god 플레이리스트를 틀자마자 함께 떼창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서로가 반가움을 느꼈다. 91년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god 오빠들의 플리를 공유할 수 다니! 하하


그렇게 자리에 앉다 수다가 시작되었다. 친구의 결혼으로 모인 자리이었지만 대화 주제는 참 다양했다. 회사에서 만난 사수와  있었던 얘기, 생일과 결혼은 누구까지 챙겨야 하는 건지부터 한 달 생활비는 어떻게 세우고, 얼마만큼 저축을 하며 사는지(별 얘기를 다하네). 이전에 함께 여행하면서 서로가 느꼈던 생각과 느낌은 어땠는지, 이런저런 에피소드들과 함께 서로가 참 다르면서도 어떻게 또 함께 할 수 있는 것인지 등등 정말 다양한 대화가 오갔다. 


그러다 생각했다. 과연 나의 관계의 바운더리 속에서 내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내가 마음을 쓰고 챙겨야 할 사람들은 누구이고 어디까지일까. 대화를 나누던 친구 중 한 명은 아주 맺고 끊음이 분명해서 give and take (라고 하지만 give give and take인 삶을 산다)를 살고 있다고 하고, 소수의 관계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고도 하고. 그러면서도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영혼은 담지 않더라도 대부분 모두와 잘 지내려고 애쓴다고 하기도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는 맺고 끊음이 명확한 편이라 1년 동안 연락이 닿지 않거나. 다시 연락하지 않을 것 같고, 연락이 와도 반갑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은 휴대폰에서 정리를 한다. '언젠가 연락이 닿을 수도 있겠지'라는 전제는 세우지 않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너무 좋아해서 만인의 친구가 되려고 애썼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는 살아가고 있었는데, 20대를 그렇게 보내고 30대고 되고 나의 물질적 한계와 시간적 한계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예전만큼이나 인간관계에 에너지를 쏟을 수 없다는 것을 서른둘이 된 지금에서 확실히 느꼈다. 그리고 '시절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내가 만나는 모든 만남에 환대하는 마음을 갖되 붙잡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어딜 가서든 서로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면 언제고 다시 만나서 또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살아오면서 겪은 많은 일들로 인해 관계에 대한 회의감 또는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도 있지만 그게 그렇게 나쁜 가르침 또는 배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의 관계에 에너지를 쏟았던 건 사실이다. 관계를 넓히려고 애썼다기보다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정리를 해나간다. 비워내야지 또 채워진다고, 관계에서도 정리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이미 견고하게 나의 삶에 자리 잡고 있는 이들이 있는데, (10년 20년 지기 친구들은 멀어지더라도 큰 흔들림이 없는 건 사실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굳이 깊이 연결되려 애쓰는 것이 과연 나에게 유익할까? 싶기도 하고.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최근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 힘쓰는 시간에, 스스로의 실력을 키우는데 힘써라. 그러면 사람들이 따라온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실 이 말에도 크게 공감을 했다. 내가 밖으로 에너지를 쓰느라 내 안을, 나의 실력을 키워나가는 시간을 버리게 된다면, 과연 먼 미래에 어떤 것이 더 좋을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이제는 지금의 관계에 감사하며, 다가올 만남을 기대하며, 오래된 나의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나의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해본다. 


앞으로 계속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욱더 많은 것을 하기 위해서라도 내 주변정리를 다시 한번 하고 정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끊어내기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중요한 것들을 위해서 적절히 조율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오랜 친구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것이다. 다른 복은 모르겠는데 정말 인복 하나는 타고났다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도 누군가의 '인복'이 될 수 있길 바라며, 지켜야 할 것들을 잘 지키며 잘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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