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 Aug 09. 2020

#14 사랑받고 사랑하며 사는 삶

온전한 나로 살아가게 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 지 3년 차. 여름휴가를 맞이해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27년 동안 단 한 번도 이사를 가본 적이 없어서 고향에 가면 가족과, 아주 오랜 친구들이 머물고 있다. 그래서 휴가를 맞이하면 꼭 고향으로 내려와 가족과 친구들을 보고 올라간다. 서울에서 보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적응을 잘한 편이고 나름 재밌고 즐겁게 살고 있다. 그래도 일상에서의 분주함, 직장에서의 받는 스트레스, 날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긴장감을 가지고 살게 되는 서울에서의 삶은 때때로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게다가 혼자 자취를 하고 살다 보면 문득문득 멀리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리울 때도 있고. 이번 휴가도 방전이 다 되어갈 즈음,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늘 분주하고 바쁘게 살던 서울에서의 삶에서 떨어져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답을 가까이에서 찾았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하는 삶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직장에서 참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 모습도 나이고 저 모습도 나이지만 직장에서 발견하는 나의 모습은 늘 낯설고 새롭다. 본성은 감성적인 사람이지만 늘 이성을 붙들고 살아야 하고, 거절을 잘할 줄 모르는 사람이지만 때로는 냉정하게 거절을 해야만 하고, 때로는 싫은 소리도 해가면서 불편한 옷을 입고 살아간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과 평가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곳에서 타인이 원하는 기준에 맞추느라 나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는데 그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어떤 모습 모습이 진짜 나인지 종종 헷갈릴 때가 많다. 서른이라는 숫자가 아직 나에게는 낯설지만 그 나이에 요구되는 '어른이'의 모습을 갖춰야 할 것만 같은 무언의 압박을 느끼며 살아가느라, 순수하고 철없는 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느끼게 될 때도 참 많았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휴가기간 동안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고, 드라이브를 가고, 오랜 친구들을 만나 크게 특별할 것 없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시간을 보내며 정말 온전한 나로 머무는 안전함을 느끼면서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은 듯했다.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의 나, 철없고 실수하고 손이 많이 가는 나일지언정, 그런 나를 이미 다 알고 있는 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누리는 그 안전함이 바로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내 평생을 함께한 가족, 그리고 10년, 20년,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해온 오랜 친구들과 주고 받은 사랑으로 내 삶이 채워지고, 채워진 사랑의 힘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힘을 얻고 또 살아가게 된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보낸 이번 휴가는 온전한 나를 되찾을 수 있었던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삶을 살면서 서로를 '자기답게' 만들어주는 이들,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고, 서로를 향한 어떠한 목적도 없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인지를. 내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사랑받고 사랑하는 삶'인데 그 삶이 그리 멀리 있지 않고 바로 곁에 있는 이들과 이미 누리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긴 휴가 동안 온전한 나로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아갈 준비를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늘 나를 환영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또 잘 살아내야지,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내야지 다짐하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7 네가 좋아할 줄 알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