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도 없던 주말드라마가 재밌어지기 시작한 것은 오인실에서 내 마음이 조금은 말랑말랑해졌을 쯤이었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한동안은 가족이나 의료진 외에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 특히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은 기피대상 1순위였다. 내가 치료받던 병원은 지방에 위치한 대학병원이어서, 병실의 평균연령이 높았다. 당시 포털에 '백혈병 투병 일기'를 검색하면 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은 모두 서울에서 치료받고 있었다. 나는 가뜩이나 까칠하기도 하고 부끄러움도 많이 타는 성격인데 거기에 낯선 사람들의 '젊은 애가 어쩌다가' 같은 눈빛을 받고 있으면 그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또 개인사를 물어보시는 어르신들이 힘들었다. 뭐, 다들 예상하듯 질문은 결혼여부를 시작으로 자녀여부까지 이른다. 그렇다보니 가뜩이나 머리도 복잡한데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기가 싫어, 혼자 있을 때면 항상 침상 커튼을 사방으로 치고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은 항암치료를 해도 백혈구가 내려가지도 않고, 열도 없어서 가족들을 모두 집으로 보냈다. 혼자 있어도 괜찮을 정도의 컨디션이었다. 그런데 하필! 혼자 있기 시작한 날 열이 나기 시작했다.
열을 확인해보니 38도였다. 한기가 들고 눈물이 났다. '지금까지 분명 괜찮았는데 왜 열이 나는 거야!' 속으로 소리쳤다. 병원에서 지급해 주는 이불 한 장을 목 아래까지 끌어올리고 있어도 한기는 가시지 않았다. 한참을 떨면서 눈물이 났다. 머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간호사님께 '선생님 머리가 너무 아파요' 했더니, 약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면역력이 약한 상태에서 열이 난다는 것은 감염 증상일 수도 있어서 의료진도 분주해졌다. 간호사님들이 수시로 다녀갔다. 그렇지 않아도 열이 나서 몸이 아픈데 '열'이라는 이슈로 내 주변이 분주해져 불안감이 더 증폭되기 시작했다.
병실 안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나에게 향해있었다. 시선을 느낀 나는 창피하고 서글펐다. 아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 상황에 어이없지만 분명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했다.
한기 때문인지, 아니면 억울해서인지 머리를 부여잡고 떨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도 병실 안 시선이 거둬졌으면, 옆에 누가 있었으면 당장 침상 커튼 좀 쳐 달라하고 싶었다. 당시에 병실 안에는 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60대 어르신이었다. 그중에서 나에게 '병원에 와서도 책을 보는 게 대단하다'라고 말씀하신 할머니를 간병하는 60대 어르신이 있었다. 나는 병실에서 간병인 어르신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이기적으로 굴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당시에 내가 항상 침상 커튼을 치고 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TV 시청을 방해하기 일쑤였다. 내 행동이 반복되자, 하루는 간병인 어르신이 한마디 하셨다. '다 같이 쓰는 병실에서 뭘 그렇게 답답하게 있어? 다른 사람 TV도 못 보게!' 나는 듣고도 모른 척했다. 속으로 아픈 내가 먼저지, TV가 대수인가 싶었다. 하지만 열이 펄펄 끓기 시작하는 그 순간, 병실 안 시선들이 나에게로 차곡차곡 쌓이던 그 순간, 망설임 없이 나에게 다가온 사람은 간병인 어르신이었다.
간병인 어르신의 어투는 무심했지만, 동작은 능숙했다. 간병인 어르신은 '보호자가 없어서 어떡해.'라고 짧게 한마디 하시며, 시선은 내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더니 허리를 숙여 '머리가 아플 때는...' 하시면서 침상의 머리 부분을 올려주셨다. 그리고 바로 시선을 돌려 수건을 찾아서 내 목에 둘러주셨다. '내가 보고 있으니까, 불안하더라. 목을 너무 횅하게 있어... 몸을 따뜻하게 해야지.'
아프기도 했지만, 부끄러움에 눈물이 났다. 울면서 감사하다 했다. 신기하게도 간병인 어르신이 내 옆을 다녀가신 후에 두통이 사라졌다. 나의 가족들이 오기 전까지 간병인 어르신의 시선은 분주했다. 담당하는 어르신과 나를 번갈아 보며, 계속해서 내 상태를 살펴주셨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든든한 그 시선은 우리 가족의 도착과 함께 수그러들었다.
이후에도 열은 치솟았고, 나는 3주 정도 격리되어 있다가 다시 오인실로 나왔다. 열이 내렸고, 침상 커튼도 걷었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병실 사람들과 병원 식단 흉을 보고, 거동이 힘든 할머니 식판을 옮겨드리기도 했다. 8시 30분에 시작하는 드라마를 함께 보고 웃고 떠들기도 했다. 병실에서 누군가 내 책에 관심을 가지면 대여를 해주고, 간식을 나눠먹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그리고 병원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내며 간병인 어르신에게 받은 보살핌이 종종 떠올랐다.
간병인 어르신 덕분에 나는 아프다는 사실과 함께 또 다른 관계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격리 이후에 그분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분의 보살핌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듯, 나 또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간병인 어르신의 보살핌 덕분에 나는 또 다른 일상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백혈병 진단 이후에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 멀리 떨어져 나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분 덕에 아프기 전에는 몰랐던 또 다른 형태의 일상을 받아들이고, 찾아 나설 수 있었다. 간병인 어르신의 보살핌이 쓸데없이 단단한 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보고, 다음 글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남깁니다.
급성골수성백혈병 투병기는 매주 토요일 밤마다 작성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