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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Nov 17. 2022

기억의 한 조각

2022.11.17

출발하기 193일 전부터 사논 비행기표가 이제는 32일밖에 남지 않았다. 여행을 기다리다 보면 어느샌가 시간이 훌쩍 지나있고 어느샌가 여행을 마치고 공허함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만 존재한다. 엄마가 밥먹듯이 말했던 '시간이 너무 빨라'라는 말이 어느샌가 공감되는 내가 되어버렸다.


며칠 전 챙겨야 하는 것들을 적어 내려 가다 가슴속에 심장이 요동침을 느꼈다. 아마 그곳에서의 나를 상상해서 일 테니 그마저도 그러려니 싶었다. 4년 만에 떠나는 여행은 어떨까. 삼십 대가 되어 처음으로 떠나는 배낭여행은 어떨까. 그날 내내 생각하다 그마저도 삶에 지배받아 금세 머릿속에서 달아나버렸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기대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것만 마주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저렴한 값에 혹해 묵었던 모텔 앞에서 마약상을 보거나 지도에서는 나오지 않는 노숙자가 많은 길. 직원이 일을 하지 않아 바닥에 옷이 널브러져 있었던 해외 유명 브랜드의 매장도 그랬다. 스타벅스는 우리나라처럼 깔끔하지도 않았고 아직도 식당 내에서 담배를 태울 수 있는 일본의 식당도 그리고 대중교통에서 겪었던 여러 번의 인종차별도 그랬다.

하지만 결국 많은 사람들은 기억을 단순화시키길 선택하고 그렇게 아주 이쁜 사진과 감동적인 '결국엔 이런 일을 겪었는데 좋은 하루였다.'라는 글로 마무리를 짓는다. 


좋은 것만 기억하면 좋으련만 미래의 내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아쉬워말았으면 한다. 그 마저 여행의 한 조각일 거라 내가 경험해야 했던 것들일 꺼라 생각하길 잔잔히 바라본다. 밤늦게 쓴 일기 한 페이지 중간에 '나는 아침을 먹고 나와 이렇게 온종일 여행을 했다.'라는 문장은 쓰고 싶지 않다. 더 자세한 기억들을 촘촘히 기록해 기억을 단순화하기보다는 생생하게 남겨두고만 싶다. 그 마저도 결국 나중이 되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한 공간에서는 기억에 남는 한 이미지만 기억하게 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약 7개월간 기다린 여행을 곧 시작할 예정이다. 한국의 12월에서는 맛볼 수 없는 추위와 바람 그리고 공기를 13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고 나면 느끼게 되겠지, 내가 책에서 또 사진에서만 봐왔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지 않더라도 그 많은 것들이 '이게 결국 캐나다야' 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저항하지 말아야지.


am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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