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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Dec 13. 2022

30살의 졸업여행을 앞둔 뒤숭숭한 마음

DEC.13.22

시끌벅적한 12월이다. 덕분에 12월의 병이 더 도져버렸다. 


12월은 이상하다. 설레다가 아쉽다가 또 설레다가, 일 년 열두 달을 열심히 달려와 조용히 쉬고 싶어도 도무지 시끄러워지는 마음을 잠재울 수 없는 매년 별일이 없었던 크리스마스와 한 살 더 먹을 준비를 하는 12월. 일주일에도 열두 번은 롤러코스터를 타게 하는 게 내게는 12월의 병이다.


일주일간의 졸업전시기간 동안 정말 세상에서 제일 많은 축하를 받은 사람 같았다. 촉촉한 이슬을 머금은, 숲길 같은 하루들이었다. 향기롭기만 하기 그지없었고 건조했던 초겨울 날에 따뜻한 마음들이 내게 한가득 다가왔다. 누군가에겐 당연히 하는 졸업전시회 일지 몰라도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꽃과 마음들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고 매일이 선물임에 분명했기에 이 나이가 되어 졸업전시를 축하받는 내게는 특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별한 마음들이 내게 왔는데 어찌 특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왜 이리 손님이 많이 오냐는 동생들에게 너네도 서른 살이 돼서 졸업 전을 하면 많이 올 거라는 말을 늘어놓았지만 탄탄히 잘 살아오지 못했더라면 이렇게 많은 인연들이 추운 날 먼 길을 찾아와 주었을까, 또다시 쉼을 가졌던 지난날에 뿌듯함을 느낀 나날들이었다. 


D-6

마음이 이상하다. 좋기만 해야 마땅한데 이 찝찝하고 제대로 되지 않은 마음은 뭘까. 30살을 12개월이나 살아왔는데 내게는 아직도 참 어려운 숫자이다.

졸업여행을 명분으로 그에게 여행을 허락받았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한사코 반대했던 그도 어느 정도 부드러워지고 몇 번의 토론 끝에 말이다. 20살에 학교를 들어와서 30살에 학교를 나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재미없는 생각들로 나를 판단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받지 않아 마땅할 상처도 많았고 진하게 남은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진해야 할 사람들은 더 짙어졌고 그렇게 다른 소중함을 더 알아차리기도 내가 진정 좋아하는걸 더 고집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런 내게 선물을 하고 싶기도 했고 오래전부터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답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12월만 생각하면 온 신경을 자극해왔다.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답게, 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한참을 고민하다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캐나다, 미국으로 여행을 결심했고 난 그를 설득하고 설득해 7개월 전부터 졸업여행 비행기표를 사뒀다. 그렇게 여행을 싫어했던 그는 경유하는 비행기표를 사겠다고 하니 흔쾌히 70만 원이라는 큰돈을 주며 이왕 가는 거 직항을 사라며 내게 황금 동아줄을 주었고 나는 그 덕분에 더 가볍고 더 행복한 마음으로 이번 여행의 스타트를 끊었다. 돈의 크기도 그렇지만 난 확실히 그의 응원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떠나는 날이 이제는 6일밖에 남지 않았다.

며칠 전 전화가 와서는 여행을 떠날 때 용돈을 주겠다는 엄마를 말렸다. 지금까지 부모님의 큰 도움 없이 혼자서 여행을 했기에 이렇게 뿌듯한 나 자신을 마주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나를 지키고 싶었다. 조금 부족해도 못 먹어도 그때의 나는 그 부족함도 여행의 일부분이라 뿌듯했으면 뿌듯했지 전혀 부끄럽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제스퍼에서 밴쿠버까지 하루를 걸려 이동하는 침대방이 있는 기차를 보고 마음이 반짝였고 엄마에게 용돈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받으라는 주변의 말들도 크게 자극 점이 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런 여행은 내게 앞으로는 자주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나이에 앞자리가 바뀐다는 건 생각해야 할 것들이 백배는 늘어나는 기분이 또 한 번 들었다. 어떤 말로 나이의 무게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은 겨우 30살이 돼서 무슨 그런 말을 하냐고들 하시지만 생각이 적지 않은 나는 또 평범치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나는 가끔 뇌를 뜯어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다시 넣고 싶을 정도이다. 또 20대에 떠났던 여행들에는 항상 패기와 열정이 가득했는데 지금 이렇게 이상한 기분으로 매일을 살아가니 말이다. 사야 하지 못할 것들도 먹고 싶지만 먹지 못할 것들도 분명 많겠지만 '서른 살이나 됐는데..'라는 쓸데없는 이유를 붙여가며 설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나에게 그런 오래 남지 못할 사욕보다는 분명 더 현명한 행위들이 있을 거라고 자부한다. 굳고 꼿꼿한 마음으로 여행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오래간만에 엄마에게 큰 용돈도 받으니 말이다.


여행경비를 모으는 6개월 동안 함께 알바를 했던 분과 오늘 식사자리를 마련했다. 내게 주셨던 따뜻했던 것들이 너무 많아 힘들었던 2022년도의 반년을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되려 내게 마음을 써주어 고맙다며 여행경비에 보태라고 봉투 하나를 건네셨다. 얼마만큼일지 모를 감사함과 울컥한 마음이 화산처럼 부풀어올라 눈물이 새어 나오는 걸 참을 수는 없었지만 가벼운 농담을 하고 그 감정을 모마시켰다.

참 이상하고 따뜻한 2022년도의 12월이다. 좋아하고 아꼈던 계절에 찬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내 주변엔 벌써 봄이 온 모양이다.


am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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