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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May 28. 2023

맑은 오월의 제자

‘수많은 제자들이 있으시겠지만 그래도 저라는 사람이 교수님께 참 맑은 오월 같은 제자로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대학원이라는 그리고 교직원이라는 단체에 소속되자마자 쏜살같이 시간이 지났고 명랑소녀라는 별명을 가졌던 사람에서 염세적인 명랑소녀가 되었다. 명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맑음과 밝은 명쾌한 이미지와 염세라는 단어가 일맥상통하진 않긴 하지만 말이다.


고래싸움에 내 등이 터져 김새우라는 별명도 얻고 뇌와 마음에 과부하가 와 거의 삼주 정도를 붓을 들지 않았다. 사회생활이 원래 이런 건 알고 있기는 했는데 어쩐지 하면 할수록 더 최악이다. 가수 아이유의 말을 빌어 말해보자면 내게 그림이라는 매개체는 마음속에 부정적인 언어나 마음들을 채에 모두 걸러내고 남은 곱고 긍정적인 마음일 때의 시선들을 표현하는 거라 차마 붓을 들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삼 주 중 어느 날엔 너무너무 맑은 하늘에 마음에 들 정도로 살랑이는 바람에 푸릇푸릇한 풀들도 정겨워서 신나서 그날을 표현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마음이 힘든 날들도 있었지만 어떤 주말엔 듣고 싶었던 말을 너무 많이 들었고 그 말들의 진심의 여부보다는 그 말을 해주는 마음들이 너무 어여쁘고 푸르르기도 했었다. 이 오월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래 남기고 싶은 좋은 인연들도 많이 생겨났다.

마음을 나누고 싶은, 취향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 다는 건 참 설레는 일임에 분명하다는 걸 오랜만에 깨달았다.


오월의 많은 새벽 동안 나는 웃고 울었는데 생각해 보면 나는 다시 낮이 돌아오면 나만의 방식으로 이것들을 극복하고 다시 바로 웃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한없이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내 몸뚱이나 얼굴은 다 마음에 안 들지만 웃는 모습 하나 마음에 들기 때문일까,

주걸륜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의 영화는 초여름 보기 좋은 색들을 하고 있다. 아주 파랗지 않아도 따뜻한 푸른색에 꼭 추억이 한 아름 담긴 것 같은 느낌. 피아노 하기를 그만두고 집에서 혼자 띵가띵가 취미로 피아노를 치던 시절 한 노래에 빠졌고 그때 처음 주걸륜의 영화를 접했다. 그리고 성인이 돼서 어떤 영화를 보게 됐고 장면의 색이나 이야기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 감독을 찾아보니 그 역시도 주걸륜이었다. 사람의 취향은 참 변하지가 않는다. 악기 소리가 들리는 노래, 은은하게 자신을 말하고 있는 색들, 흩날리는 나뭇잎, 그렇게 잘 어우러지는 것들을 항상 강아지처럼 졸졸 쫓아다녔다.


없어도 될만한 행사가 가득인 이 오월, 어쩌면 행사 때문에 다채로웠을까 생각도 드는 이 오월. 교수님께 스승의 날 메시지를 드리다가 마지막 문구를 고민했는데 결국 난 참 맑은 오월 같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현재는 조금 염세적인 인간이었다. 돌아올 한 주에 작업 계획을 세웠다. 뇌에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여기저기 휘젓고 다닌 거 같았는데 이제 조금만 원래의 나로 돌아가야지.

May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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