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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Jul 05. 2023

23.7.4 나의 상담 일지_1

흘러가고 기억되지 않은 것들은 그대로 흘러가게 두자.

상담의 끝머리에서 눈물이 흘렀다. 글로 받아본 나의 첫 느낌에서 풀이 많이 죽어있고 의욕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셨던 선생님은 생각보다 파이팅 있는

모습에 다행이라고 하셨다.


비가 내리기 전에는 무조건 학교에 내려가야겠다고 생각도 했지만 그보다 상담시간이 너무 타이트해서 일찍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전날 새벽 두 시에 잠들었는데 아파트 일층에서 들리는 공사소리인지 잔디 깎는 소리인지 시끄러운 기계음에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졌었다. 불쾌함에 눈을 뜨긴 했었지만 새빨갛게 물들어있는 하늘이 유난히 잘 보이는 내방이라 다시 잠드는데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들었다. 물론 지저귀는 산새 소리도 듣기 좋았고 말이다.


집에서 10:30에는 차를 타러 출발하면 됐는데 08:00부터 나를 깨우는 엄마의 소리에 살짜쿵 짜증이 몰려왔지만 ‘나 09:20까지 자도 돼!! 깨우지 마’라고 말한 뒤에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짧은 단잠을 자고 정확하게 다시 나를 깨운 엄마의 부름에 투덜투덜 식탁에 앉았다. 나를 일찌감치부터 깨운 이유는 이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떻게 항상 이렇게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할까? 모든 엄마들이 그럴까? 아니면 내가 본가에서 아침을 먹을 일이 없어서 유독 내게 밥을 챙겨주는 걸까.

일찍 일어나는 건 정말 힘든 일인데 일찍 일어났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투덜대긴 했지만 난 확실히 챙김과 사랑을 받고 있는 딸임에 분명했다. 언젠가 이 순간이 그리운 날들이 올 테니 말이다.


북적북적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타 어제 국현미(국립현대미술관)에서 구매한 책을 읽을 작정이었는데 두 페이지 만에 졸음이 쏟아졌다. 하루종일 이곳저곳 돌아다니고도 잠을 못 잔 어제의 여파임이 분명했다. 내일 05:50까지 편의점 알바 땜빵을 위해 일찍 잠드는 게 오늘의 목표이기에 절대 잠에 들면 안 된다고 다짐을 다 하기도 전에 나는 잠에 들었고 그렇게 거의 다 목적지에 도착을 하고 나서야 잠에서 깼다.

곧 비가 올 거 같은 하늘에 얼른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를 맞는 건 그리 불쾌한 일은 아니지만 전기자전거가 물에 젖는 건 싫기 때문이었다.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돌리자마자 비가 왔다. 얼마 전 비가 폭포같이 쏟아져 흠뻑 비에 젖었던 날이 머릿속에 스쳤다.

다행히 얕은 빗줄기에 흠뻑 젖지 않고 집에 도착했고 옷만 후딱 갈아입고 학교로가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상담에 앞서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 건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고 그렇게 상담이 진행됐다.


과거 세 살 때의 이야기부터 중학교 그리고 최근의 이야기까지.. 선생님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꾸밈 없이했다.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거짓이 숨김이 없어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혼자 글을 끄적이는 것보다 일기로 하루를 남기는 것보다 더 부끄러울 만큼 솔직한 50분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감히 가족에게도 지인에게도 또 과거의 나를 남기는 어느 곳에도 하지 못하는 말들을 누군가에게 남기는 건 내게 엄청난 용기이자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 가득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상담의 끝머리에서 어쩌다 이렇게 누군가를 의심하게 되었는지 선생님과 원인을 찾다가 선생님의 답변을 듣고 눈물이 울컥했다.

’ 그때의 수연 씨를 미워하고 자책하지 마세요. 그때의 수연 씨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고민해서 낸 결정이었을 거예요.‘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내가 봤을 때 바보같이 답답했던 일련의 사건들에 내가 한 선택을 듣고 선생님은 그때의 나한텐 그게 최고의 선택이었을 거라고 해주셨다.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아 그랬구나. 그때의 난 바보가 아니었고, 그만큼만 생각할 수 있었던, 그 조차 어려웠던 여리고 여린 사람이었구나.’ 싶었고 그 생각이 들자 바보같이 여겼던 과거의 내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흘렀다.


새로운 나이를 맞닥뜨리는 내게 어쩌면 이 상담이

삶의 길잡이에 앞서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고 말씀해 주시며 오늘 상담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무언지 말씀해달라고 하셨다.

안 그래도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상담내용을 녹음해도 괜찮냐고 질문하고 싶었는데 오십 분간 나눈 대화 중에 뚜렷이 기억에 남는 게 윗 문단의 이야기뿐이어서 질문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제대로 들었다. 녹음을 해도 괜찮냐는 질문에 선생님께서 이유를 물으셨다.

좋은 대화가 많이 오가고 새로운 감정이 오가는 이 날들을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글을 쓰는 것도 알리고 말이다. 아예 불가능 한건 아니지만 법적인 문제로 인해 녹음은 불가능하니 메모를 하면 좋을 거 같다고 하셨다.


집에 오는 길에 겨우 찾은 올드디카에 담긴 과거를 보며 걸어왔다. 과연 나는 좋아하는 것들을 보면 한없이 또 티 없이 맑았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래도 마지막 선생님의 한마디에 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되야겠다고는 생각했다.


완벽주의자 성향이 인간을 좀 더 힘들게 만들기도 하는데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남겨두려는 게 나에게 더 힘들 수도 있다고 하셨다. 흘러간 것들은 기억되지 않은 것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우리 같이 그냥 흘려보내자고

12번의 상담이 끝나면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있을지 가늠할 수는 없다. 그래도 상담은 내게 웃는 모습을

찾을 수 있는 방법, 노력정도로 그렇게 의욕적인 행위이다.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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