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ronto, CANADA
이십 대 초반부터 해외에 자주 다닌 나는 언제 어디를 나가든 낯설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흔히 하는 물갈이도 안 하고 도미토리에서도 아주 잘 잤으며 외국음식을 잘 못 먹긴 하지만 미식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안 먹고 말았다. 당황할 만한 일들이 생겨도 그냥 아~하고 넘어가는 편으로 여행에서 나는 이방인이라는 느낌보다는 스펀지 같은 느낌이 더 컸었다.
하지만 긴 공백이 탓이었을까, 나이가 들면 겁이 많아진다고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조금씩 별것도 아닌 것들이 걱정이 되는 바람에 출국전날부터 비행기 안에서까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백프로라고 치면 18프로 정도 수면게이지를 채웠으려나, 그래도 덕분에 시차적응은 매우 빠르기도 했다. 걱정이 되면 몸으로 부딪혀야 익숙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곧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잡생각에 잡생각을 거쳐 잡생각이 엄청 커질 때쯤 나는 토론토 공항에 도착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급하게 타고 내리지 않는데 그러다 보면 종종 승무원이나 승객들이랑 간단한 대화를 하는 경우가 있다. 오늘도 내리려고 하고 있는데 한 승무원이 내 가방을 유심히 보면서 대화가 시작 됐다. 도미토리를 쓰다 보면 마음대로 불을 못 켜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를 대비해 달아 둔 휴대용 랜턴을 보고 신기해하던 그녀에게 이래저래 설명을 했더니 본인은 나와 완전 다른 성향이라 내 가방에 달려있는 모든 것들이 신기하다고 그랬다. 4년 만의 여행인 것과 40여 일 동안 캐나다와 미국을 여행한다는 말을 듣더니 내게 부럽다고 했다. 더 많이 다니지 않냐며 내가 왜 부럽냐고 했지만 어딘가를 가는 것보다 그 용기와 성향이 부럽다고 말했다. 그런 그녀는 조심히 행복하게 여행하고 돌아가길 바란다며 내게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들뜨고 뿌듯한 기분을 살짝 만끽하고는 나는 기내에서 발을 떼었다.
백팩을 앞뒤로 메고 작은 케리어를 끌고 이리저리 기차역을 찾아 나섰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헛걸음을 한다 싶었는데 나는 피어슨 공항의 터미널 3에 내렸고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터미널 1로 갔어야 했다. 많은 짐가방을 몸에 두르고 공항 직원에게 길을 물으니 같은 방향으로 가니 길을 알려준다 하였고 그렇게 나는 토론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많은 여행지에서 사람들에게 시선을 받는다고 생각하긴 했다. 특히 내가 짐을 옮기는 날이면 말이다. 아직도 내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많은 짐덩어리를 몸에 두르고 있는 동양인 여자여서가 아닐까 싶다. 그게 내 편견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토론토의 union역은 증권회사나 은행본사들이 많은 증권가의 집결지이다. 엄청난 복잡함을 예상했고 출구도 단번에 찾을 수가 없었다. 기차역 창문으로 노란 신호등이 가득하고 분명 빌딩 숲이지만 이국적인 느낌이 가득한 그곳을 마주했다. 어서 빨리 이곳을 한껏 만끽하고 싶은데 출구가 같이 생긴 문이 보이질 않아 계속해서 뱅뱅 돌다 누군가 오가는 문을 발견했다. 그 출구같이 생기지 않은 비상구 같은 문이 문이라는 걸 깨닫고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바로 밖으로 향했다. 꼬박 이틀을 거의 잠을 못 자고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제대로 된 컨디션과 정신머리가 아니긴 했지만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출 수는 없었다. 숙소를 향하는 내내 미어캣 마냥 고개를 내밀고 하나하나 빠짐없이 이곳을 눈에 담았다.
문을 잡아주는 따뜻한 마음들, 살짝 건네는 눈인사, 분명 추운 겨울인데 따뜻한 색과 마음이 가득한 도시. 토론토는 이상한 도시임에 틀림없었다. 드디어 많이 기다렸던 나의 여행이 시작됐다.
Dec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