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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참고 걸어왔구나.

2020년 3월의 23번째 날

by 느림주의자

뭐 얼마나 대단한 여행이라고 지금껏 해온 여행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한 여행에 불과한데 일 년 팔 개월 만에 비행기를 타기 전 난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너무 많이 참아서일까, 매일매일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참고 있으니까 어쨌든 하고 있으니까. ‘할 거면 아무 말 없이 그냥 해’라는 생각을 자주 해왔던 나는 지금 많이 약해져 있었다.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내가 조금은 가엽기도 했었다. 행복 그게 뭐라고, 그게 뭔지 계속 난 그걸 찾고만 있었다. 그걸 가지고 있던 나를 그리워하면서.


그를 만나고 행복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그렇게 알게 됐던 건 세상엔 많은 종류의 행복이 있다는 거였고 나는 지금 굉장히 사랑받고 행복한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욕심쟁이처럼 목이 말라 있었고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면서 그를 힘들게 했다. 한참을 참고 참다 결국 우리는 엄청난 싸움을 벌였다. 그에게만큼은 자존심을 부리지 않는 나라서 우리는 또다시 꽁냥 거리는 관계로 돌아왔지만 내가 싫어하는 거 평생 안 하고 살 테니 나한테 본인이 싫어하는 여행을 평생 하지 말라는 그의 말을 듣고 안 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난 꼭 그런 질문을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듣고는 나는 참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고 한참을 생각하다 여행을 안 해도 좋다고 했다. 그만큼 당신이 내게 크게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며칠 뒤 아무렇지 않게 제주도에 가도 괜찮겠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잠깐의 고민을 하곤 좋다고 말했다. 혼자인데 말이다. 40대 즈음이 되면 걱정 없이 보내줄 수도 있을 것 같다던 그 였는데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혼자 여행은 절대로 안된다더니 왜 갑자기 보내주는 거냐고 묻고도 싶었지만 혹시라도 그 말을 듣고 보내주겠다는 말을 다시 취소할까 봐 그냥 고맙다고만 했다.

매일매일 힘들다고 말하는 내게 그는 잘 참고 있지 않냐는 말을 많이 해줬다. 그 말이 귓속에 박히고 박혀 단단한 사람이 되길 원했다. 코로나의 여파로 외출도 외박도 하지 못하는 그를 두고 나는 제주로 떠나기로 했다. 부모님에게는 말도 안 하고 훌쩍 떠나온 이 여행의 이유를 가족 단톡 방에 장문의 메시지로 보내 놓고 핸드폰은 비행기 모드를 해버렸다. 조용하고 싶었다. 그렇게 길게 쓴 나의 메시지를 받고 나의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했다. 엄마도 아빠도 걱정 많은 청춘이던 때가 있으니까, 여행은 허락해도 절대 절대 운전은 안된다는 그의 말에 제주도에 도착하면 하루 종일 버스를 신경 쓸 것이 뻔해 밥도 제대로 못 먹을 것 같아 비행기를 타기 전 빵집에 들렀다. 계산을 하려던 찰나 사장님은 내게 코로나 때문에 우리 모두 힘들죠?라는 말을 건네시며 경단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오래전부터 먹고 싶었던 떡이었는데 뜻밖의 선물에 마스크로 미소가 가려져 눈을 더 활짝 웃어 보였다.

요깃거리로 뱃속을 채우고 사장님께 또 한 번 감사인사도 하고 드디어 짐을 붙이러 갔다. 너무 오랜만에 체크인이나 시간 계산도 못해 몇 시간 전에 공항에 가야 맞는 건지 묻곤 했는데 여유를 부리며 온 탓이었을까 짐을 붙이기 전에 무인 체크인 기계로 체크인을 하는데 창가 쪽의 자리는 모두 사라지고 비행기 뒤쪽 복도 쪽의 자석만 남아있었다. 하늘을 너무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멀미도 하는 나라 창가 자리가 없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었지만 어쩔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난 아쉬운 마음으로 체크인을 끝내고 짐을 붙이러 갔고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비상구 좌석 창가 자리로 업그레이드해드렸어요.’


다른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뜻밖의 업그레이드를 받고는 좋은 기분을 숨길수가 없었다. 승무원의 안내를 받고 혹시나 사고가 난다면 누군가를 함께 도와줘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마음 편히 눈을 감지는 못했지만 미세먼지를 뚫고 올라와 보는 맑은 하늘도 이상하게 알 수 없던 기분에 뜻밖의 선물들도 어떻게든 참아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뚜벅이로 처음 여행하는 섬 제주는 자동차 여행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고 오래간만에 등에 들쳐 멘 가방의 무게를 느끼니 더 무겁게 가방을 꾸리고 다녔던 과거의 내가 한없이 대단했다. 그를 만나곤 항상 자동차로 운전을 해 무뎌져 버렸던 시선들이 다시 생생히 살아났다. 이곳저곳에서 맞이해주고 있는 돌하르방도 돌담에 피어있는 유채꽃도 그리고 높이높이 자라나는 야자수도 여러 가지 색의 지붕들도 눈에 띄는 것들이 내 마음에 담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오랜만에 밝게 웃어 보였다. 지난날 여행을 하던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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