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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Dec 27. 2022

05. 외롭고 꽉 찬 이상한 마음

Quebec.CANADA

지긋지긋, 이제 눈을 밟기도 싫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 엠비티아이로는 절대 집에 있을 내가 아니었다. 역시나 나는 밖을 나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있었고 간단히 나가야겠다고 했지만 카메라며 뭐며 온갖 것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또 나였다.

집 앞을 나서니 어젯밤의 잔해들이 길거리에 어마무시하게 남아있었다. 내가 아닌 누군가도 어젯밤이 고됐을까 생각해 봤다.


시티로 가려면 잠깐의 오르막을 지나야 했다. 얼마나 올라야 이 도시의 끝이 보일까 생각해 봤다.. 눈이 쌓인 도시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숙소 앞에 있는 박물관을 지났다. 민가에 박물관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좀 신기하기도 했다. 또다시 눈이 오고 바람이 거세졌다. 좀처럼 미소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주복을 입고 걸어 다니는 귀여운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너무너무 귀여워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말을 할 정도로 성장한 아이거 아니지만 말이다. 아이부모와 눈을 맞춰 인사하고 아이를 바라봤다. 이내 쪼그려 앉아 악수를 했다. 데이먼은 파란 눈을한 백인 아이였는데 코에서 코와 입에서는 액체란 액체들이 질질 나오고 있었지만 아이 엄마는 그걸 신경 쓰지도 않았고 그 액체들은 아이의 얼굴에서 얼어가고 있었다. 감당하지 못할 귀여움에 한참을 질척이다 이내 가족들을 보내줬다. 이렇게 퀘벡에서 데이먼 덕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어젯밤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한 하루였다. 조금은 최악인 마음으로 내게 꿈의 도시였던 퀘벡을 마주했지만 내 마음을 계속 이렇게 둘 수 없기에 부정의 마음들을 싹둑 잘라버렸다. 이렇게 고생을 하면 별것도 아닌 것들에 또 행복감을 느끼는 나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또 알 수 없이 높아지는 자신감에 나를 되찾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었다.


동화 속 같은 퀘벡에는 최악이었던 어젯밤을 금세 잃어버릴 정도로 사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여행객이 많은 도시라 그런 걸까. 다들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가족 혹은 연인들과 이 시간의 이곳을 즐기고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 나왔다. 고백 건데 외롭고 부러운 마음이 밀려오긴 했지만 혼자만의 크리스마스이브를 잘 보내야지 싶었다.

타운을 전부 돌고도 네시가 되기 전에 집에 들어왔다. 해가 토론토보다 더 빨리 지는 이곳의 운명이 내 여행시간을 뺏어가는 거 같아 얄궂기도 하지만 그 덕에 초등학교 때보다 더 바른생활 어린이가 된 것 같은 건 덤이다.


마트에서 사 온 석류맛 탄산음료와 치즈, 하몽, 과일을 이쁘게 플레이트 했다. 음악을 들을까 글을 쓸까 고민하다 생간적인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아 이내 넷플릭스를 켰다. 어제부터 내 마음속을 휘저었던 안 좋은 부류의 감정들이 오늘을 지배할까 걱정했다. 하지만 오늘 하루 많은 눈인사와 마음씀을 받아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은 녹아내렸다. 외롭지만 또 누군가 함께하는 사람들이 부럽지만 무언가 꽉 찬 이브다. 가방 속 와인을 뜯고 싶지만 이 마음을 좀 진정시켜보기로 했다.


Dec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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