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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Mar 01. 2023

16. 타국에 지인이 있다는 것

Vancouv er, CANADA


아침식사를 하면서 만난 소중한 연인이 불러준 우버를 타고 숙소에 안전히 도착한 뒤 짐을 맡기고 샤워를 했다. 기차에 충분히 넓은 샤워실이 있었는데 빌어먹을 잠을 자다가 샤워를 못하고 나왔다는 게 말이 안 됐지만 엄마의 뱃속과 비슷한 울림이라는 대중교통의 울림은 나의 단잠을 너무나도 불러왔는데 별을 보다가 잠에도 들고 썩 괜찮은 밤이었다.


밴쿠버에는 아는 지인이 두 명 있는데 한 명은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같은 방을 썼던 루씨언니이고 한 명은 몬트리올에서 만난 콜롬비아 친구인 비앙카이다. 밴쿠버에 오면 루씨언니가 쉬는 날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고 비앙카와는 꼭 만나자는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며칠 전 비앙카에게 메시지가 왔다. 지내던 아파트에 문제가 생겨서 잠깐 호스텔에 묵고 있는데 내가 지내는 곳이라고 했다. 반가운 소식에 숙소에서도 꼭 만나고 같이 놀러 나가자는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다.

오늘은 정신이 없고 피곤하니 내일쯤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샤워를 하고 어딜 먼저 갈지 지도를 보기 위해 일층 로비에 앉아있는데 익숙한 그림체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비앙카였다. 반가운 포옹을 하고 그녀는 아침을 가지고 내게로 왔다.


비앙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오늘 일찍 퇴근하니 저녁을 함께하기로 한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와 함께 있기로 했다. 비앙카와 그랜빌섬에 있는 큰 마켓에 가서 피자도 사 먹고 비앙카의 눈알보다 큰 (비앙카는 눈이 크다) 샤인머스켓을 사서 나눠먹고 재밌는 대화들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통하지는 않았지만 (100프로 나의 영어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한국말은 잘 못할 거라며 나의 영어실력을 이해해 줬고 따뜻하고 낯선 대화로 밴쿠버에서 첫 오후를 보냈다. 밴쿠버에서 마케팅 공부를 하는 것만 알았던 그녀는 18살이었고 나의 나이를 들은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약간의 비는 자연스럽게 맞으면서 함께 걸었던 밴쿠버의 거리에 우리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조금 지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고 나는 언니를 만나러 나왔다.


언니가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났기 때문에 작년에도 봤었고 또 반년 조금 넘게 같이 살았던 적이 있어서 그랬던 건지 무지 반가웠지만 오랜만이라는 느낌도 낯설다는 느낌도 들지는 않고 그저 편안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거의 떡볶이를 먹고는 하는데 언니는 여기서 한국음식 사주면 너무 맛이 없어서 욕먹을 수도 있다며 나를 직접 집으로 초대했다.

언니가 살고 있는 써리라는 지역은 운전을 한다면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100년은 더 된 오래된 다리를 건너야 하며 기차로는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언니는 집이 오래된 아파트라며 다운타운 쪽으로 좀 더 올라가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사는 곳은 다운타운이랑 먼 곳이 좋다고 생각했다. 언니가 차린 미용실에서 함께 집으로 향했다. 같이 살고 있는 남자친구분이 이미 떡볶이와 어묵탕을 다 끓여놓으셔서 함께 맛있고 따뜻한 저녁을 보냈다. 언니의 집에서는 휘닉스파크가 보였고 밴쿠버의 야경이 한눈에 보였다. 소화시킬 겸 함께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 근처에 있는 비치에 가서 야경을 구경하고 추위를 물리치고 색소가 아주 많이 들어간듯한 아이스크림도 먹고 나는 트레인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입속에 있던 설염이 언니를 보고 난 뒤 마법처럼 사라졌다. 약을 발라도 이틀은 걸릴 것처럼 크고 깊었는데 말이다. 해외에서 이렇게 나를 챙겨주고 함께해 주는 사람이 있는다는 것조차 내게 큰 운이었다. 한때 동고동락을 하며 지냈던 언니가 멋진 원장님이 되어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픈선물하나 챙겨 오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캐나다에서 즐겨마셨던 메이플티를 한통 샀다. 물을 자주 마시는 언니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Jan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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