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couver, CANADA
하루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집에 돌아왔던 어제저녁, 로비에서 만난 콜롬비아 친구가 콜롬비아 요리를 해주었다. 함께 라틴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만드는 방법도 알려주었는데 18살인 그녀는 이 음식을 만들 때만큼은 나보다 더 언니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프로페셔널했다. 옥수수파우더를 우유와 물 버터, 소금, 설탕으로 간을 한 물과 반죽을 해 안에 치즈를 넣고 호떡처럼 만드는 요리였다. 내게는 좀 짜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녀는 전혀 짜지 않다고 했다. 그녀에게 한국의 매운맛을 보여주고 싶어 한국에 꼭 오라고 말했다.
오늘은 루씨언니가 쉬는 날이라 함께 근교를 둘러보기로 했다. 언니는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몇 번을 물어봤지만 차를 끌고 나를 멀리까지 데려가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워 쉬이 여기저기를 말할 순 없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소중한 일주일에 딱 한번 있는 휴일이니 더더욱이 그랬다.
벤쿠버에서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곳과 날씨차이가 많이나 한인타운에서 언니와 만나 가지고 있던 겨울옷을 한국으로 조금 붙였다. 언니의 남자친구(이하 오빠)의 회사에서 실내를 디자인했다는 브런치집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오랜만에 언니와의 투어가 시작됐다.
겨울이면 다른 도시보다 따뜻한 서부의 벤쿠버는 눈대신에는 비가 많이 온다. 거의 매일 말이다. 도착 전부터 매일이 비라서 언니랑도 비 오면 어디 갈지 그냥 괜찮은 카페에서 커피나 한잔해도 괜찮으니 여행에서 있었던 일 수다나 떨까 생각했었다. 근데 어제저녁부터 날씨앱에 비가 사라지더니 하늘이 갰고 겨울의 벤쿠버가 비가 그쳤다. 혼자서 날씨가 좋아서 여기도 가도 괜찮겠다 저기도 가도 괜찮겠다 하며 언니는 혼자 구시렁거렸고 우리는 번츤레이크로 향했다. 번츤레이크는 벤쿠버 북쪽에 있는 앤 모어지역에 위치한 호수가 있는 큰 공원인데 트레킹 코스가 있는 곳이다. 한국이라면 이런 깊숙한 숲 속을 들어오기까지 도시에서부터 몇 시간이 걸리겠지만 브런치 집에서 언니의 차에 탄지 이십 분이 좀 넘어서 이런 깊숙한 숲 속에 도착하니 캐나다가 대자연의 도시라는 게 실감 났다. 여름이면 테닝도 하고 튜브도 타고 일광욕을 즐긴다는 이곳은 호수를 따라 트래킹 코스가 있는데 성인 남성이 쉬지 않고 3-4시간 정도 걸으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고 할 만큼 아주 큰 호수가 있는 공원이었다. 멀리 있는 로키산맥도 구경하고 작은 아기들을 캥거루처럼 앞에 품고와 트래킹을 하는 서양 아줌마들을 보고 감탄을 하기도 하고 이곳의 공기를 가져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깊숙이 몸 안쪽까지 이곳의 공기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우리는 버너비 마운틴으로 향했다.
버너비 마운틴으로 가는 길에 있는 록키포인트 파크에 들렀는데 바다와 연결된 작은 마을에 부두처럼 산책로가 있었고 그 길을 들어서자마자 록키산맥이 한눈에 보였다. 이미 산맥을 보고 왔는데도 그 밑에 자리한 풍경들이 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잠깐 들른 그곳에서도 언니는 나를 담아주기 바빴고 우리는 부지런히 그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버너비 마운틴에는 SFU(사이먼프레이저대학)가 있는데 학교와 산이 한 구역에 있다는 게 또 새롭고 부럽기도 했다. 나는 마운틴에 간다길래 산에 올라가 나보다 했는데 되게 높은 곳에 주차공간이 있어서 하이킹을 하지는 않았다. 주차를 하고 내렸을 때 그냥 어느 정도 높겠구나 생각했는데 이곳에서는 록키산맥도 밴쿠버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잔디밭과 의자 테이블등을 잘해놔서 정말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록키산맥을 마주하고는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더니 눈물이 흘렀다. 언니는 놀리면서 동영상으로 나를 담았지만 이 눈물은 확실히 지금까지 여행에서 행복한 순간에 넘쳐흐르는 감정과 비슷한 부류의 눈물이었고 창피하다는 생각에 억지로 눈물을 멈추진 않았다. 한걸음 걷고 멈춰 그곳을 담고 두 걸음 걷고 멈춰 그곳을 담아가며 한참을 그곳을 마음과 카메라에 담았고 문득 아무 생각 없이 걸음이 멈추어지면 그대로 멈춰 그곳을 마음 깊이 담았다.
언니는 내게 오늘 하루동안 벤쿠버에 있는 여행지를 모두 보여줄 작정이었는지 다 봤으면 얼른 차에 타라 고했다. 크게 볼 건 없었지만 차로 이렇게 이동하면서 벤쿠버를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나 자유로울 수 있는 게 너무 좋았다. 린케년과 캐필라도서스펜션 브릿지는 버너비 마운틴과 차로 10-20분 거리에 있는 곳인데 폭포를 중앙에 두고 흔들 다리를 만들어 건너가 대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캐나다에서 길을 잃으면 이끼가 난 방향을 보고 걸어가라고 하는데 상상이상으로 많은 이끼들이 이 겨울의 나무를 보호하듯 감싸져 있었고 나는 이 이끼를 보고는 절대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캔버스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많은 풍경을 내게 새겼다. 돈을 내고 했던 투어들보다 훨씬 알찼고 그만큼 언니에게 너무 고마웠다.
하루 온종일 벤쿠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곤 언니 집 근처로 돌아왔다. 언니, 오빠와 함께 벤쿠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초밥집에 가서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었다. 언니는 얘 오늘 두 번이나 울었다며 놀리듯 말했지만 그래도 뿌듯하고 좋았다고 했다. 언니를 만나고서는 마음이 편안했는지 바로 월경을 시작했고 잠을 아주 푹 자기도 했다. 오늘 보면 언제 보냐는 말을 하며 아쉬운 마음에 집에 가려고 했는데 방이 하나 더 있으니 오늘 하루 자고 가라며 언니는 내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아니라고 괜찮다고는 했지만 그 마음이 내심 너무 좋았다. 언니랑 동고동락을 했어서 그런가 사실 언니집에 오니 불편함이 별로 없었고 그냥 숙소를 간다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끄제였는데 하룻밤을 언니와 함께 더 보낼 수 있다니 내게는 아주 큰 이득이었다. 결국 언니집에서 하루를 자기로 했고 너무 좋아하는 나를 보니 언니와 오빠는 아예 숙소의 짐을 빼고 들어오라고도 했지만 그건 아니라며 아픈 마음을 쥐고 거절했다. 종일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은 되뇌었는데 언니도 날씨요정이 와서 그런지 좋은 날씨에 좋은 거 보면서 여행해서 좋았다고 해 줬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화장실에서는 향기가 났고 곰팡이도 물때도 없었다. 숙소에 있는 바디워시, 샴푸, 린스보다 훨씬 향기롭고 질 좋은 용품들로 몸을 닦고 나왔다. 마치 여행을 끝내고 집에 와서 개운히 샤워를 하는 느낌을 받았다. 언니, 오빠와 티브이를 보며 수다를 떨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구를 수도 있을 정도로 넓고 한참을 밑으로 내려가야 발이 닿는 침대에서 꿈같은 밤을 보냈다. 정말 제대로 된 재정비가 분명했다.
자기 전에 언니가 오늘 하루 찍어준 사진을 받았다. 언니는 온종일 사진을 찍을 때마다 ‘너무 웃었나?’라는 말을 되뇌곤 했었는데 정말 확실히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보니 조금은 낯설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나는 가끔 억지웃음을 지을 때도 있었고 가끔 서는 카메라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었는데 비로소 원래 여행에서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좋아서 웃는 얼굴이었다. 행복해하는 나를 보니 더 행복해졌다. 한국에 돌아가 안 좋은 일들이 생길 때면 오늘의 나를 되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Jan10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