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couver, CANADA
떠나려니 비가 온다. 내가 떠나 슬픈 걸까 아님 내가 이곳을 떠나 슬퍼하는 마음을 이곳이 온 힘을 다해 보여주는 걸까
밴쿠버에 오자마자 했던 일은 버스시간표를 바꾸는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적은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룬 게 오늘이었는데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터미널에 갔는데 문제가 생겼다.
날씨 때문인 것도 알겠는데 바꾸고 나니 창구 직원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너 티켓 잘못 샀었네’
무슨 말인고하니 미국 워싱턴의 시애틀행 버스표를 산 게 아니라 캐나다 빅토리아의 시애틀행 버스표를 산거였다. 어쩐지 티켓을 살 때 이상하긴 했다. 아무리 두 나라가 가깝고 붙어있다고 한들 1시간 30분 밖에 안 걸린다는 게 말이다. 어이가 없긴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슬며시 언니에게 연락을 다시 해봤다. 언니는 바로 내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숙소 변경을 위해 숙박어플을 켰다.
너무 어이없게 시애틀에 못 갔다. 따지고 보면 안 간 게 맞다. 내일 다시 떠나는 버스표를 구매하고 루씨언니네 미용실로 향했다. 언니와 또다시 재회하고 서로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처음으로 내 여행짐들을 본 언니의 입은 떡 벌어졌고 도대체 이렇게 가지고 어떻게 다니냐며 내게 연신 물었다. 언니는 산티아고 순례길도 다녀오지 않았냐며 뭘 놀라냐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무거운 배낭은 가지고 못 다닌다고 그랬다. 언니의 미용실 창고에 온 짐을 다 맡기고 뭘 할까 고민하다 근처의 센트럴 파크를 추천해 줘서 그곳으로 향했다.
비가 왔지만 우산 대신 코트에 달려있는 모자를 쓰고 올드 디카 하나 가지고 나와 가볍게 걸어 다녔다. 비가 와 사람이 거의 없는 공원엔 내 발걸음과 빗소리가 가득했다. 기분 좋은 풀냄새와 빗소리에 듣고 있던 이어폰을 빼서 가방에 넣었다. 촉촉한 물을 머금은 자연물의 색들이 그제야 제색을 찾은 듯했다. 호수에 있던 오리들이 반가워 다가갔는데 그들은 내 마음도 모르고 물로 향하기 바빴다.
조금은 비가 그친 것 같았는데 나무에 고인 물들이 바람에 휘날려와 비가 그쳤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언니의 퇴근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미용실 옆에 스타벅스에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치는가 싶더니 갑자기 쏟아지는 얇은 빗줄기에 코트에 달린 모자로는 이 날씨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주문을 하는데 몰려오는 민망함에 직원에게 우스갯소리로 ‘비가 너무와, 내 앞머리 좀 봐 진짜 웃기지’ 라고 말했는데 직원은 전혀 비꼬는 느낌 없이 ‘왜 멋있는데?’라고 해줬다.
언니와 함께 집에 돌아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오빠에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고기를 먹자던 언니의 말에 오빠는 말도 안 되는 양의 고기를 사 오셨다. 누런 종이에 싸여있는 생고기가 영롱하기 그지없었다. 이곳에 와서 고기라면 스테이크나 먹었지 이렇게 한국식 비비큐를 먹으리라고 상상도 못 했는데 끝내주는 신김치에 젓가락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언니는 그런 내 밥그릇 앞에 김치를 놓아주었다.
의도한 듯 의도하지 않게 다사다난한 마지막날로 캐나다에서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이런 게 바로 제대로 된 끝맺음이 아닐까, 그곳의 온전한 자연의 색을 보고 소리를 듣고 향을 맡았다. 카페에서 오늘을 기록하고 오늘을 그려내는 것, 그건 정말 온전한 여행자의 기술이자 사명이 아닐까.
Jan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