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ttle, USA
어젯밤 언니, 오빠와 함께 끝내주는 저녁 식사를 했다.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끝내주게 했고 제대로 된 쉼이었다. 아침에 언니의 매장까지 함께 갔다. 정말 시애틀로 가기 위해 우버를 불렀다.
우버에 올라타기 전에 정말 마지막 포옹을 했는데 뭔가 울컥했지만 꾹 눌러 참고 조만간 또 보자고 했다. 김이라는 성씨의 이름을 보고 내가 한국인인 줄 알았는지 우버에 올라타니 한국노래가 흘러나왔고 잘 부탁한다는 언니의 말에 그는 걱정 말라며 한국말로 답변을 했다.
센트럴 퍼시픽역으로 가는 이삼십 분 동안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캐나다는 어땠냐는 그의 질문에 언젠가 캐나다에서 그림을 팔고 싶다고 대답했다. 신호가 빨간 불이 됐을 때 그림을 보여줬다. 온라인으로라도 빨리 판매를 시작하라며 그림가를 물어봤고 그림이 아니라 사진인 것 같다며 끊임없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꼭 다시 캐나다에서 좋은 일로 만나면 좋겠다는 대화를 끝으로 난 역에 내렸다.
내가 타는 버스는 캐나다의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중간에 입국심사대에서 모든 짐검사와 질문을 하고 미국으로 넘어간다. 국경을 직접 넘어가서일까 공항보다 질문이 더 많은 느낌을 받았다. 내 앞에서 한참을 검사하던 중국인 남성 두 명이 한쪽으로 빠졌고 내 차례가 넘어왔다. 음식을 갖고 넘어가면 안 된다는 걸 아주 잘 알지만 까먹고 가지고 온 버터와 베이컨을 꺼내 버려도 되겠냐는 질문에 말을 했으니 괜찮다며 입국 심사대 직원은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무사히 통과했다. 결국 그 중국인 남성 두 명은 다시 버스에 함께 올라타지 못했고 그 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우린 미국으로 넘어와 시애틀로 향했다.
시애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많은 텐트를 보았다. 물론 캠핑하는 이들의 텐트는 아니고 노숙자들의 집이었다. 내가 했던 걱정은 배가 되어가고 있었고 미국에서 사는 사촌언니는 인상을 쓰고 다니는 게 도움이 된다며 내게 명심하라 했다. 도착하고 숙소에 어떻게 갈까 지도를 뒤적거리다 근처에 노숙자 쉼터가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우버를 불러 돈을 썼지만 편히 숙소에 도착했다. 여행지에서 우버를 타는 일은 잘 없는데 어두워진 도시 분위기와 누가 봐도 배낭여행객인 나에게 노숙자는 너무 위협적인 존재였다.
다행히 완전 다운타운의 중심부에 있는 숙소를 잡아서 해 질 녘에 숙소에 도착했어도 밖에 나갈 용기가 조금은 생겨났고 체크인을 하고 바깥으로 향했다. 숙소 바로 앞에 있던 시애틀의 파이크플레이스 마켓으로 향했다. 나는 원래 여행을 할 때마다 매번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기보다는 대형마트나 우리나라의 중앙시장 같은 마켓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사서 호스텔에서 음식을 만들어먹곤 한다. 1907년에 만들어져 미국에서 제일 오래된 마켓인 시애틀의 파이크플레이스는 처음엔 8명의 상인으로 시작했지만 규모는 점점 더 커져 현재는 언뜻 봐도 백개는 되는 가게들이 있어 보였고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가지 색이 있는 그곳을 둘러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바로 도넛을 튀겨주는 가게부터 어마무시한 크기의 생선들을 던져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생선가게, 달콤한 향이 가득한 초콜릿가게, 꽃잎과 꽃가지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지만 결코 꽃의 색은 아름다웠던 꽃가게까지 그 외에도 많은 상점들이 하나하나 자신의 색을 하고 옷을 입고 있었다. 시끌벅적 시장의 소리, 귀에 콕 박히는 언어들은 아니지만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들 참 생생했다. 조금 늦은 시간에 가서 무언가를 구매하진 못했고 눈으로만 담은 후 근처의 스타벅스 일호점으로 향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벅스는 시애틀에 일호점을 두고 있는데 듣기로는 진짜 일호점은 화재로 사라지고 근처에 다시 세웠다고 했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새로 리뉴얼한 지점이었어도 스타벅스의 옛날로고와 색감을 살려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기는 했다. 마켓에서 조금 가다 보이는 정체 모를 줄에 여기 맛집이 있구나 싶었는데 그 줄은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가는 줄이었고 줄에 설지 말지 잠시 고민을 했지만 스타벅스에 마케팅에 휘둘려 여행시작부터 스타벅스의 시티컵을 모아 왔던 내가 일호점을 그냥 지나칠순 없었다. 이 매장에서는 커피와 기념품을 전부 팔고 있었지만 다들 커피보다는 기념품을 많이 사러 왔기 때문에 줄은 생각보다 금방 줄어 매장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무거운 짐가방에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은 많고 한참을 고민하다 하나의 텀블러를 골랐다. 워낙 매장에 오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계산대 뒤에 기념품을 쌓아두고 판매를 하고 있었는데 딱 내가 고른 텀블러만 품절이 됐었다. 시애틀에서 4일 정도 머물기 때문에 나는 또 방문할 수 있었고 점원에게 언제 물건이 들어오는지 물어보고 매장에서 나왔다.
샌프란시스코만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언덕이 많은 시애틀이었다. 스타벅스에서 줄을 서는 동안 해가져 있었지만 많은 여행객에 조금은 자신감이 생겨 근처 항구를 둘러보러 갔다. 항구에 내려가는 길에는 많은 계단이 있었고 나는 해가진 시애틀 항구에 있었다. 항구에서는 시애틀이 한눈에 보였는데 높은 건물들이 똑같이 불이 안 꺼지는 건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였지만 뭔가 또 다른 느낌의 밤이었다.
숙소에 들어와 보니 방 안에 나 말고도 두 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미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한 에밀리는 내일이면 한국에 돌아간다고 했고 나와 영어 이름이 같은 엘리 언니는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미국 여행을 하고 설 전에 한국에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각각 따로 온 세명이었지만 밴쿠버에서 한국말을 잔뜩 하고 오긴 했지만 이렇게 숙소에서 한국인을 만난 게 처음인지라 서로가 너무 반가워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타국에서의 약속은 가볍고 쉬워지기 마련이다. 여행에서의 설렘, 흥분, 도전과 같은 비슷한 감정들이 없던 용기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내일 핸드폰을 잃어버린 엘리 언니와 하루를 함께하기로 했다. 일곱 시 반쯤 숙소에서 나서도 괜찮냐는 언니의 질문에 뭐가 어렵냐는 듯 대답을 하긴 했지만 너무 가벼운 답변은 아니었나 자기 전 생각해 봤다.
Jan13,23